역사교과서에 대한 국정화 논의는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역사 인식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역사에는 양면성, 곧 자랑스러운 역사와 부끄러운 역사가 있는 법인데, 현행 역사교과서에는 역사의 굴절된 모습이 지나치게 부각되거나 자랑스러운 역사가 축소 폄하되고 있다. 

2013년 역사 인식과 해석에 차별성을 두고 발행되었던 교학사교과서 채택 원천봉쇄 사건은 거센 저항과 공격에 부딪쳤다. 당시 극단적인 좌파들이 쏟아낸 반(反)민주적 인신공격과 테러 위협은 좌우의 이념대결을 넘어선 무한 권력과 이익에 대한 독점욕의 현시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화와 설득을 통한 역사의 균형 잡기는 물 건너간 것처럼 여겨졌고, 최선은 아니지만 최악의 굴절된 역사만은 떨쳐보자는 입장에서 국정화 논의가 추진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대의에 공감하여 필자는 국정화 지지에 동참했다.

현행 역사교과서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역사인식은 민중사관 혹은 수정주의 사관이다. 그 기저에는 마르크시즘의 계급투쟁론과 배타적 민족주의가 깊이 깔려있다. 이런 위치에서 한국사를 인식하게 될 때, 한국사 내에서 기독교의 자리는 거의 없어지고 만다. 이런 입장이라면 기독교는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았어야 할 ‘낮선 손님’에 불과하다.

현행 역사교과서들이 타종교에 비해 기독교와 관련된 서술에 유독 인색한 이유도 여기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이방의 기독교’라는 딱지는 일제가 민족의식의 수원지였던 한국교회를 이 땅에서 몰아내기 위해 집요하게 추구했던 논리이자 선동 구호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사에 미친 한국교회의 역할과 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위해, 그리고 역사 서술의 종교편향성을 바로잡기 위해 적절한 역사 인식이 절실하다.

다음으로, 현행 역사교과서들에 내재된 친일·반공·반미·독재라는 단선적인 역사 이해로는 격동의 세월을 겪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제대로 규명할 수 없다.

지난 130여 년 동안, 우리나라는 구한말, 일제강점기, 해방, 남북분단과 대치, 군사정권, 문민정권 등 다양한 통치 패러다임을 경험했다. 그 와중에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세계가 놀라고 부러워하는 급격한 성장과 변화를 이루어냈다. 그만큼 한국사의 주체와 과제가 복합적이고 다양했다. 따라서 현행의 역사 이해로는 중요한 역사가 축소나 과장, 혹은 미화나 폄하와 같은 왜곡을 초래하게 되며, 실제로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끝으로, 국사라면 건강한 역사 서술이 필요하다. 역사 서술이 완전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역사를 지나치게 폄하하거나 미화해서도 안 된다. 역사적 사실은 사료(史料)에 토대를 두며, 해석은 선택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역사는 창작이기도 하다. 즉 단 하나의 역사만 존재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역사적 사실까지 창작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해석이 역사적 사실보다 앞서게 될 때, 그 역사는 더 이상 역사가 아니라 창작된 역사소설이나 신화가 된다. 현행 역사교과서의 역사 인식이 과연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인가 하고 물을 때, 긍정적인 대답을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 ‘해방전후사의 인식’(한길사, 1980)을 집필한 세대와 그들에게 역사를 배운 세대들이 그 흐름을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 또한 북한식의 역사절대주의를 지향하는 국정화에는 반대한다. 그러나 국가수반의 임기가 5년제인 대한민국의 실상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건강한 역사가 세워지기를 바랄 뿐이다. 자랑스러운 역사를 통해서는 긍지를, 굴욕의 역사를 통해서는 겸허히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균형을 추구하는 역사면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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