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은 목사(서울중앙지방·성락교회)
물론, 사도행전 1장 8절에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 아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이해하는 일에서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는 얘기다. 이 유명한 구절이 사도행전 전체의 중심이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창세 이래 지금까지 이어지는 존재의 전체 흐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이 심장이라면 그 심장이 사회 현상적인 실체로서 박동하는 것이 교회 공동체다.

교회의 초기 30여 년 역사를 기록한 책이 바로 사도행전이다. 교회가 어떠했으며 마땅히 어떠해야 하는가를 알려면 사도행전을 보아야 한다.

그 1장 8절이 이렇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구절은 철저하게 선교 지향적이다. 한국 교회는 이 구절을 참 좋아한다. 강력하게 복음을 전하고 그로써 양적 성장을 이어온 교회가 한국 교회다.

목회자들이 사도행전을 설교하기 좋아하는 이유가 여럿이겠지만 3000명, 5000명, 남녀의 큰 무리 등으로 기록된 양적 성장이 그중 하나일 테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 교회는 사도행전적인 선교의 역동을 잃어버렸다. 까닭이 무엇일까?

1장 8절로 들어가자. 여기에서 초점은 복음 전도다. 전도에는 전도자가 필요하다. 이 구절의 표현으로 증인이다. 이 구절에서 명제 셋을 말할 수 있는데 증인이라는 단어는 끝에 나온다.

‘성령이 오신다’, ‘권능을 받는다’, ‘증인이 된다’. 관건은 증인인데 성령이 임하시고 사람이 권능을 받는 과정 없이는 증인이 생길 수 없다.

창세 이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가장 강력하고 결정적으로 피조세계에 개입하신 일 두 가지, 곧 당신 스스로 사람이 되신 일과 영으로서 사람들 속에서 살기 시작한 일의 목표가 증인을 만드는 것이다. 증인 없이 증언이 있을 수 없고 복음 전도에서 상당 부분 메신저가 곧 메시지다.

한국 교회가 이 점을 놓쳤다. 우리는 증언하는 데 주로 신경을 썼지, 제대로 증인 되는 일에 소홀했다. 증인 곧 복음의 전사를 만드는 데 한국 교회가 열정적이라고 반론할지 모른다.

그러나 한국 교회가 이해하는 복음의 용사는 주로 전투적이고 공격적이고 독선적이다. 사도행전의 증인은 사랑과 진실과 평화로 인격과 일상이 변화된 사람들이다.

윤리 도덕적으로 고결한 사람이다. 윤리 도덕이란 말이 인본주의적이라고 거부감을 느낀다면 성결한 사람이라고 하면 된다.

둘만 예를 들자. 먼저 거짓의 문제다. 거짓말하면 증인이라고 할 수 없다. 증인은 사실을 왜곡하거나 진실을 숨기지 않는다.

교회 안이든 밖이든 삶의 어떤 영역에서든 그렇다. 무슨 일이든 내편이냐 아니냐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내편이면 무조건 괜찮고 반대편이면 무조건 나쁘다는 사람은 증인이 아니다.

증인에게 절대 권위는 하나님 말씀뿐이다. 다른 것은 다 상대적이다. 말씀의 진리는 거짓과 상충한다.

그러면 생각해보자. 우리 사회의 그리스도인은 정직한가? 교단 임원 선거, 표절, 재정, 교세 통계 등 교회 내부의 문제에서 거짓을 스스로 드러내어 수술할 정도로 정직한가?

세월호 사태,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메르스 사태, 법조계 전관예우, 고위공직자의 윤리성 등의 사회적 사안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어느 집단을 편들지 않고 사안 자체를 말씀의 진리에 비추어 판단하고 말하고 행동하는가?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많은 경우 보수 집단의 헤게모니에 셋방살이하고 있지 않은가. 진보적 이데올로기를 추종하고 있는 것 아닌가.

보수와 진보를 넘어서는 진리의 말씀으로 공의의 마당을 만들고, 보수와 진보를 여기에 초대하여 함께 끌어안는 어머니의 품이 교회 아닌가 말이다.

또 하나는 사랑의 문제다. 이것도 거짓에 대해 얘기한 방식으로 생각하면 된다. 사도행전의 증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외에 어느 것도 절대 기준이 아니었다.

보수나 진보의 진영 논리에 이용되는 사랑은 더는 기독교적인 사랑이 아니다. 사랑과 공의가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이고 증인은 이를 닮은 사람이다.

그리스도인 국회의원이나 기업가 중에 이런 증인이 누구인가? 공직자, 예술가, 학자, 연예인, 법조인, 교육자 중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증인이 누구인가?

그리고 슬프지만 이 점도 물어야 한다. 목회자 가운데 증인이 누구인가? 일상과 인격에서 사랑과 공의로 사는 증인 없이는 사도행전 1장 8절은 작동되지 않는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