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철 교수(서울신대·상담대학원장)
6월 29일이 지나갔다. 6월 29일이 되면 무엇이 기억에 나는가? 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있었다. 1987년 6.29선언,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필자가 미국에 유학 중일 때 일어난 참사였다. 미국에 있을 때 한국에서 일어난 사건이니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연평해전은 한일 월드컵으로 국민들이 열광하고 축제 분위기 속에 있었기에 기억하지 못한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6월 29일이 가까워지면서 신문과 텔레비전에 연평해전과 삼풍백화점이라는 단어가 자주 언급되었다.

1400여 명이 넘게 사상자가 생겼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가 난 그 날을 왜 기억하지 못했을까? 30분 가량의 전투로 해군 6명이 사망하고 19명이 부상당한 연평해전이 있던 날을 왜 기억하지 못했을까?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했기에 기억하지 않을 뿐이다. 기억하지 않아도 생명에 해롭지 않다고 여겼기에 기억하지 않았을 뿐이다.

올해 6월 29일에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가 있은 지 20주년이 됐고제2연평해전이 있은 지 13년이 됐다. 연평해전이 영화관에 관객순위 1위를 하고 “백화점 반쪽이 날아갔어요”하고 그 당시 목격자들이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다.

국민들은 영화를 통해 연평해전을 기억하려고 한다. 국민들은 목격자와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를 기억하려고 한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다른 이야기들이 벌어지고 있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회장의 로비 사건에 관심을 갖다가 황교안 전 법무부장관이 우여곡절 속에 국무총리로 임명되는 과정에 관심이 있었다.

지금은 대통령의 ‘유승민 의원 사퇴압박’과 ‘유승민 버티기’가 주요 이야기가 되었다. 아마도 정치권에서는 삼풍백화점과 연평해전이 중요하지 않은가보다.

삼풍백화점 붕괴로 죽은 사람도 있지만 실종된 사람들도 있다. 시신을 찾기도 전에 붕괴 잔해물들을 난지도에 묻어버렸다.

난지도에는 실종된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기억하기 싫어서 속히 덮어 버린 것이다. 기억하면 아픔이 계속될까봐 두려워서 속히 덮어 버린다.

그러나 기억은 치유다. 함께 기억하고 공감해줄 때 치유가 일어난다. 기억하고 공감한다는 것은 아파하는 타인이 나와 상관있다는 선포이다. 기억하고 공감할 때 다른 사람의 경험이 나의 경험이 된다.

공감과 동정심은 서로 다르다. 타인이 비슷한 처지에 있을 때 동정심이 생긴다. 반면에 공감은 상대방의 입장이 나의 입장과 달라도 일어난다.

공감은 서로 다른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일어나는 감정이다. 공감은 서로 경험이 달라도 일어나는 감정이다. 

예수님은 공감의 신(神)이다. 자신과 처지가 다르고 사회적 지위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였기 때문이다. 유대문화에서 천하게 여겼던 어린아이들을 가까이 하였다. 유대문화에서 천대받았던 과부가 드린 두 렙돈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셨다.

공감의 신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묻는다. “누가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인가?” 삼풍백화점 유가족, 연평해전 전사자들과 유가족, 세월호 유가족을 기억하고 공감할 때 정계에 계신 분들은 우리의 형제요 자매가 된다.

돌봄을 베풀어야 할 위치에 있는 성결인은 누구를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로 여기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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