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룡 목사(서울강서지방·큰나무교회)
“모든 종교는 각기 표현 양식은 달라도 결국 동일한 하나님께로 인도한다.” “모든 종교에는 구원의 길이 있다.”
듣기 좋은 말이다. 만약 모든 종교에 동일한 구원의 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만한 논리적 근거는 매우 빈약해 보인다.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모든 종교는 각자 표현 양식이 달라도 결국은 동일한 궁극적 실재(ultimate reality)에게 도달한다고 주장한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존 힉(John Hick)이다. 힉은 힌두교, 유대교, 불교, 기독교 등 모든 종교가 동일한 궁극적 실재에 대해 문화적으로 다르게 인식하고 경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첫째, 힉은 하나님의 개념에 대해서 불가지론적 입장을 취한다. 다시 말해 궁극적 실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알 수 없는 존재’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라고 답한다.

그는 말하길“우리는 실재 자체에게 인격적이거나 비인격적이거나 또는 선하다거나 악하다거나, 목적을 가지고 있거나 목적이 없거나, 심지어 하나이거나 여럿이라고 하는 그 어떤 본질적인 속성도 부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종교 다원주의의 하나님은 어떤 개념이나 논리로도 알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합리성과 설득력이 결여되어 있다. 만일 궁극적 실재가 알 수 없는 존재라면 힉은 어떻게 그 알 수 없는 실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는가? 또한 그 알 수 없는 하나님이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었는가?

만일 하나님이 실제로 알 수 없는 존재라고 한다면 우리가 그 하나님이 알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조차 결코 알 수 없어야만 한다.

따라서 힉이 그 알 수 없는 존재를 이미 알고 있고, 그분의 특성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된 주장이다.

둘째, 종교 다원주의자들은 궁극적 실재(하나님)는 어떤 개념이나 논리, 그리고 이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존재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 자체가 모순이다.

왜냐하면 다원주의자들도 궁극적 실재에 대해서 ‘궁극적’이라는 개념과 ‘실재’라는 개념, 그리고 ‘알 수 없는 존재’라는 개념을 적용시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이미 어떤 개념과 논리와 이성을 활용해서 하나님을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개념과 논리의 부적합성을 말하면서도 그것들을 활용하여 하나님을 설명한다. 이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사실 개념과 논리라는 이성적 수단 없이 하나님을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셋째, 그들은 ‘하나님은 논리가 아니라 오직 체험으로만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종교 다원주의자 오강남씨는 궁극적 실재는 “말이나 이론의 영역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체험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하나님이 선한지 악한지, 인격체인지 비인격체인지 알 수 없으며 오직 체험으로만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종교적 체험과 힌두교의 종교적 체험이 동일한 종교 체험이며, 둘 다 동일한 하나님에 대한 체험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기독교에 방언이 있듯이 힌두교에도 방언이 있다. 둘 다 동일한 방언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인식론적인 문제가 대두된다.

자신이 흠모하는 하나님이 어떤 존재인줄도 모른 채 단지 체험만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고자 한다면, 그 체험이 사단에 의한 체험인지, 하나님에 대한 체험인지 명확하게 구분할 방법이 있겠는가? 모든 종교적 체험을 동일한 체험으로 봐야 하는가? 판단할 근거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기독교 신앙에는 하나님을 아는 정확한 지식이 중요하다.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인류의 구원을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 여기에 대한 명확한 지식과 이해가 필요하다.

그리고 인격적인 신뢰와 헌신이 뒤따라야 한다. 종교 다원주의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중요하다.

그 토대위에 하나님을 경험하는 신앙 체험이 필요하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성령 체험, 우리 신앙에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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