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나니(Anagni) 습격사건으로 아비뇽에 유폐당했던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는 주민들의 도움으로 로마로 돌아갔다. 그러나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에 의해 조롱 당하고 상처받은 그의 권위는 더 이상 지존의 영광을 누릴 수 없었다. 자신을 배신한 코로나(Sciarra Colonna)를 파문한다는 한이 가득 담긴 칙서를 남겼지만, 심신의 피폐를 견디지 못해 1303년 10월 11일 바티칸에서 숨을 거두었다.

▨… 뒤를 이은 교황 클레멘스 5세는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의 압박으로 아비뇽에 머물러야 했다. 그 아비뇽의 유수 기간 중에 황당한(?) 재판이 열렸다. 피고는 이미 사망한 지 7년이 지난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였다. 죄목은 교황이 생전에 수탉의 피와 도자기 그릇 안에 지핀 불을 이용해서 악령들을 불러내는 마술을 행했으며 또한 ‘남색 상습범’이었다는 것이었다.

▨… 보니파키우스 8세와 필리프 4세의 한쪽이 죽어도 끝날 수 없었던 싸움의 원인은 성직자에 대한 세금 문제였지만, 그 내면에는 권력욕이라는 인간의 속물적 본능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 속물적 본능이 신앙이라는 인간이 지켜야 할 최후의 보루마저 무너뜨릴 때 거룩함을 찬양하던 이들의 세계가 코미디 수준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음을 저들의 진흙탕 싸움은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 우리 교단에서 벌어진 말도 안 되는 송사와 재판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을 중세기의 코미디같은 사건과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것이다. 전 총무들의 목사면직건, 성결원건, 전남중앙지방회건, 재판위원·헌법연구위원 소환건 등 신앙인으로선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송사·재판건들이 비록 교단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하더라도 속물적 본능이 아니라 교단을 사랑하는 마음이 조금 곁길로 빠져 빚어진 일일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다. 

▨… 제109년차 총회의 화두는 법질서 확립이다. 총회장은 “법질서를 세우는데 최선을 다하고 상식이 통하는 교단을 목표로 하겠다”고 약속하였다. 부총회장들도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하나되는 교단을 이룩하는데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총회장단이 한 마음으로 밝힌 소신을 위해 약속한 만큼만 노력한다면 교단을 뒤덮고 있는 불신의 운무는 반드시 걷힐 것이다. 우리교단의 본질이 성결인데 조금 곁길로 빠졌었다고 본질의 빛깔마저 바래기야 하겠는가. 이제는 새 총회장단이 구호보다 실천하는 성결을 보여 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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