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두 목사(대구지방∙수성교회)
교단정치사적 안목에서 제108년차 이신웅 총회장의 좌표는 개혁입니다. 최근 수년 간 전임자들 중 이 목사님만큼 개혁을 전면에 내세우며 취임한 총회장이 없었습니다.

그는 2014년 5월 28일 취임식에서 “복음의 능력으로 교단이 부흥하고 성장하는데 헌신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또 2014년 6월 9일 ‘성결신문’과의 취임 인터뷰에서 복음의 본질회복과 확산운동은 ‘십자가와 부활복음이 있어야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의미’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그가 교단의 모든 문제는 복음이 해답이라고 단언하는 이유는 기존의 교단 운영이 그동안 비복음적으로 운영되어 왔다고 진단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종교적 범주에서의 개혁은 언제나 본질로의 회귀운동으로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이신웅 목사의 복음 운동을 ‘개혁’으로 해독하는 이유입니다.

언젠가부터 교단 일각에는 기존의 교단 운영이 소위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한 주류 인맥의 놀이터라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비판자들은 그들 주류 인맥이 오랫동안 교단의 모든 정책과 행정 및 인사를 지배해 오면서 불법과 전횡을 일삼았다고 고발합니다.

이러한 비판을 단순히 ‘교권에서 배제된 비주류의 불만이나 선동에 불과한 것’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나름의 근거가 있습니다.

작금 우리 교단 총회가 인간구원과 구성원들의 공동선을 추구하기 보다 총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교권 피라미드 구조로 고착되고 있는 현실이 우연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신웅 총회장의 복음 운동 천명은 교단정치사적으로 볼 때 천신만고 끝에 교권을 장악한 ‘비주류의 시대’를 여는 헌장이자 교단 개혁의 마그나 카르타에 버금가는 일대 사건인 것입니다.

그런데 회기를 겨우 1개월 정도 남긴 시점에 이신웅 총회장의 행보는 공(功)보다 과(過)가, 빛보다 그늘이 많다는 평가지수가 높아 보입니다.

그는 임기를 시작하는 시점에 이미 교권을 사유화한다는 비판을 자초했습니다. 항존위원회를 자파 일색의 코드 인사로 전횡했기 때문입니다. 소위 개혁 주도세력이라는 비주류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은 총회 재판위원회(재판위)였습니다.

재판위의 첫 프로젝트는 전 총무 송윤기 목사 구하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이 어찌 그리 제105년차 선거관리위원회가 우순태 총무의 당선 무효를 주도하던 과정과 닮았는지.

합법을 가장한 폭거. 이 사태는 제108년차 재판위와 제105년차 선관위의 DNA가 동일하다는 증거로 기록될 것입니다.

게다가 최근 장광래 장로와 성해표 장로의 건을 재판위원회로 송치한 것은 치졸함의 극을 넘어선 것입니다. 재판위가 임원회의 하청기관으로 전락했다는 조롱은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입니까? 교단 개혁에 대한 생각 자체가 틀렸다는 것이 저의 대답입니다. 그들은 교권을 매개한 주류와 비주류의 관계를 “갑-을 관계”로 상정하고 개혁을 말합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 볼 때 역대 주류와 비주류 모두 특정 지역과 인맥을 중심한 이익 카르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교단의 소수에 불과하며 대대로 교단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교단 개혁은 기존의 주류, 비주류 모두가 갑이고 이미 교단의 70%를 차지하는 작은 교회(목회자)들이 을이라는 인식 전환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 헌법에 의하면 ‘하회는 상회의 결의와 명령에 복종할 의무’만 있습니다.(헌법 제12조 3항) 그런데 상회의 하회에 대한 의무 규정은 아예 없습니다.

당연히 개혁은 이 이상한 형태의 ‘갑-을 관계’를 해소하기 위한 상회의 각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작은 교회는 단순히 시혜적 대상이 아닙니다.

이신웅 목사의 복음 운동은 결국 영성주의로 전이됩니다. “다음세대 문제 해결도 역시 답은 복음이다. 영성주의로 가야 한다. 복음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하나님이 그럴 능력이 없겠나.”

복음 운동이 영성주의로 변질되는 것은 그가 복음을 전략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복음은 전략이나 도구가 아닙니다. 복음 자체가 본질입니다.

이신웅 총회장의 복음 운동이 결국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은 그와 함께 개혁을 주도하는 세력이 사심(私心)과 망상(妄想)에 길들여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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