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형은 목사(서울중앙지방∙성락교회)
시인 김지하는 ‘밥’이란 시에서 밥 곧 먹는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경탄한다.
“밥은 하늘입니다 /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 밥은 하늘입니다 (중략) 밥이 입으로 들어갈 때에 하늘을 몸속에 모시는 것 / 밥은 하늘입니다”

사람은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은 아니지만 먹어야 산다. 먹는다는 것은 사람의 생명이 존재하는 뜻을 이루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조건이다.

먹지 못하면 죽는다. 그러고 보면 먹지 못하는 사람을 먹이는 것은 그 생명을 내신 창조주의 뜻에 참여하는 일이다. 거룩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엄마’ 이 말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뭐가 생각나는가? 엄마는 무엇보다 먹이시는 분이다. 어떤 생명보험회사에서 만든 6분 정도짜리 동영상을 보았다.

엄마들이 등장한다. 이십대 자녀를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호주로 보낸 엄마들이다. 엄마들이 보고 싶은 자기 아이들 얘기를 한다. 어느 엄마가 말한다.
“걘 겉절이를 좋아해요, 겉절이 담글 땐 그 아이 생각이 나지요.”

장면이 이제 호주로 바뀐다. 이십대 젊은이 몇명이 어느 날 식사 초대를 받는다. 메뉴는 한식인데 ‘엄마 손 정식’이다. 음식이 나오는데 한 수저 떠먹어보고는 깜짝 놀란다.

참 익숙한 맛이다. 엄마가 해준 음식 맛처럼 말이다! 조금 있다가 누가 문을 노크한다. 음식 서빙인 줄 알고 대답한다.
“들어오세요.”

그런데 엄마가 들어온다! 아이가 놀라며 감동한다. 어떤 아이는 엄마를 끌어안는데, 어떤 아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운다. 엄마들이 집에서 쓰는 그릇까지 가져와 음식을 차렸다.

호주의 슈퍼마켓에서 음식 재료를 고르고 골라 아이에게 늘 해줬던 평범한 밥상을 차렸다. 엄마가 자기 아이에게 가장 대표적으로 기억되는 것을 엄마의 음식 맛으로 해석해 낸 것이다.

동영상에 이런 자막이 나온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길은 때로는 힘들기도 합니다. 그 순간 가장 힘이 되는 건 당신 곁의 소중한 사람들. … 평범한 일상, 어쩌면 가장 소중한 순간일 수 있습니다. Real Dreams Never Stop.”

소중한 사람 엄마가, 제 딴에는 다 컸다지만 엄마에겐 아직 어린아이 같은 사랑하는 아이에게 해주는 소중한 순간을 밥 먹는 것으로 그린 아름다운 영상이다.

엄마가 밥을 해주시는 분이란 말은 얼마나 깊은 뜻을 가진 것인지 모른다. 엄마는 현상적으로도 생명의 모태다. 사람의 혈통은 모계로 결정된다고 한다. 정신적인 끈으로도 그렇다. 부모를 그리는 마음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버지보다는 엄마가 더 깊고 강할 것이다.

먹는다는 것은 단지 신체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생물학적인 문제가 아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를 보라. 엿새 동안 천지를 만드시면서 사람을 맨 마지막에 만드셨다. 중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가장 중요해서다.

신체를 가진 사람이 살 수 있도록 환경을 미리 마련하셨다. 사람을 만드시고서 하나님은 사람에게 할 일을 주신다. 다른 피조물을 돌보아 다스리라는 것이다. 그리고서 먹거리를 주신다.

창세기 1장 29절이 이렇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교회 공동체가 주님께 받은 가장 큰 책무는 사람들을 먹이는 것이다. 영혼의 양식인 말씀과 육신의 양식인 밥이다.

한국 교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다시 깊이 살펴야 한다. 현장의 개 교회들을 비롯하여 교계 연합단체들과 다양한 형태의 기독교 사역들에서 먹는다는 거룩한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정직하게 따져야 한다. 내 양을 먹이라 하신 주님의 명령에 관계 없는 일은 과감하게 그만둬야 한다.

오늘 밥을 먹었다면, 참 고마운 날이다. 영혼과 육신의 밥은 근본적으로 하늘 아버지가 주신다. 엄마 역할을 맡은 교회 공동체가 나눈다. 먹는다는 것은 큰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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