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룡 목사(서울강서지방∙큰나무교회)
젊은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대놓고 묻지 못하는 질문이 있다. “목사님,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 정말입니까?” 이 질문은 일부 회의적인 기독교인들뿐만 아니라, 기독교를 비판하는 안티들의 단골 메뉴 중 하나이다.

그들은 ‘처녀가 어떻게 아이를 낳을 수 있는가? 동정녀 탄생은 신화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예수는 신화다'를 쓴 프리크와 갠디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고대 신비종교의 신화에서 베낀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도올 김용옥 교수는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우리나라 박혁거세, 김알지, 그리고 주몽 신화와 동일한 수준의 설화로 취급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주장들은 타당한 것인가? 첫째,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고대 희랍 신화에 나오는 신들의 탄생은 동일하지 않다.

고대 희랍 신화에서 말하는 동정녀 탄생은 인간으로 변장한 신적 존재가 인간 여자와 육체적 접촉을 통해 생명을 탄생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반신반인의 존재가 처녀와 일종의 성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생명을 탄생하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페르세우스(Perseus) 신화에 의하면, 아크리시오스 왕은 그의 딸 다나에(Danae)를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청동 탑 속에 가두어 두었다.

그런데 제우스가 황금 비로 모습을 바꾸어 방으로 스며든 뒤 다나에를 임신시켰다. 그래서 페르세우스가 태어나게 되었다.

이처럼 희랍 신화는 신들이 자신의 육욕을 채우기 위해 인간 여자와 육체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성적 접촉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에 의해 마리아의 태에서 탄생하게 된다.

예수님은 어떤 남자나 신적 존재의 씨에 의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분의 동정녀 탄생은 하나님이 처녀의 몸을 빌려서 이 세상에 들어온 것을 말한다.

둘째,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우리나라 시조 설화와는 역사적 정밀성에 있어서 그 차이가 확연하다.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 신화는 그가 죽은 지 최소한 1100년이 지난 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되었다.

김알지와 주몽 신화도 그들이 죽은 후 최소한 천년 동안 구전되다가 그 후에 문자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기록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약 40년에서 50년도 채 지나기 전에 문자로 기록되었다.

따라서 역사적 정밀성에 있어서 한국의 시조 설화들과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셋째,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의 능력으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났다는 믿음은 초기 교회 신앙의 핵심이었다.

동정녀 탄생에 대한 믿음은 초기 교회 속에서 확고하게 가르쳐졌던 사도들의 전통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신앙의 규범으로서 사도들의 전통은 초기 교부들에게 온전히 전수되었다.

안디옥의 주교 이그나티우스(Ignatius)는 주후 110년 경에 에베소의 교인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우리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모태에서 성령에 의해 잉태되었다.” 이그나티우스는 그의 스승 사도 요한으로부터 이 신앙을 물려받았다.

또한 주후 125년경에 아리스티데스(Aristides)가 쓴 ‘로마 황제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변호’라는 글을 통하여, “예수는 성령에 의해 히브리 처녀의 몸에서 태어났다”고 증언하고 있다.

게다가 주후 150년 경, 순교자 저스틴(Justin Martyr)은 ‘트라이포와의 대화와 변호’라는 글을 통해서 동정녀 탄생에 대하여 명확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처럼 초기 교부들이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처음부터 예수님의 신성과 그분의 동정녀 탄생을 굳게 믿고 있었다는 증거는 많으며 확고하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하나님이 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찾아 오셨고, 그 예수께서 나의 구원자로 오셨으며, 하나님이 우리 삶의 고통 속에 함께 하심을 믿는다는 것을 말한다. 임마누엘! 그 분 안에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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