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룡 목사(서울강서지방∙큰나무교회)
필자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던 생물학 박사를 만나 창조주를 설명한 적이 있다. 설명을 들은 그는 감사하게도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한 후 그가 처음 던진 질문은 이것이다. “창조주가 과연 기독교의 하나님일까요?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신은 아닙니까?” 비록 하나님이 존재한다 해도 그 하나님이 꼭 기독교의 신이 아닐 수 있지 않는가라는 의문이다. 이 의문은 오늘날 많은 비신자들이 기독교인들에게 던지는 질문일 수 있다.

세상을 만든 창조주는 기독교에서 설명하는 하나님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다른 종교에서 말하는 신적 개념은 그렇지 않다. 신관을 간단히 분류하면 무신론, 범신론 그리고 유일신론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무신론은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논의의 대상이 못 된다.

둘째, 범신론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신이며, 우주 자체가 신이라고 믿는다. 범신론은 우주 자체가 궁극적인 존재요 신이기 때문에 우주를 만든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대 우주론에 따르면 우주는 영원하지 않다. 우주는 시작이 있고 끝도 있다. 우주는 우주 대폭발과 함께 시작되었고, 모든 연료를 다 태우며 서서히 죽어가서 결국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과학적 사실이다.

만약 우주가 죽는다면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은 어떻게 되겠는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신들도 우주와 함께 죽게 된다.

 범신론에서는 우주가 신인데 우주가 죽으면 과연 누가 우주를 구해 줄 수 있겠는가? 바로 이것이 범신론의 한계요 약점이다. 이와 같이 유한한 존재는 무한한 창조주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셋째, 유일신론이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는 이슬람교,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뿐이다. 이 세 종교 중에서 과연 어느 종교의 신관이 인격적이며 지성적이고 도덕적이며 전지전능한 유일한 창조주 하나님의 개념과 일치하는가? 이슬람은 유일신을 믿고 있지만 인격적인 신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알라는 세상을 창조한 후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알라는 인간의 죄 때문에 이 세상에 들어와서 자신을 희생하는 신이 아니다. 알라는 기계적인 하나님에 가깝다.

이슬람 신관의 문제점은 초월자 하나님이 있기는 하지만 그 신의 내재를 부인한다. 알라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세상에 찾아오거나 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슬람의 신은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슬람과 유대교 신관의 최대 약점은 삼위일체의 인격적인 하나님 개념이 없기 때문에 완전한 하나님이 될 수 없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주 칼럼, ‘삼위일체 하나님’에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우리는 피조세계를 통해서 창조주의 특성을 귀납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만일 세상에 창조주가 계신다면, 그 신은 우주를 창조할 만큼 전능해야만 한다. 우주를 디자인할 수 있을 만큼 지혜롭고 전지해야만 한다. 그리고 세상에 도덕성을 부여할 만큼 인격적이어야 한다.

그분은 인간의 죄악을 해결할 만큼 사랑이 충만하신 분이어야 한다. 그리고 선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정의로우신 분이다. 그분은 가장 완전한 최고의 존재이다. 이런 기준들에 모두 부합하는 창조주는 과연 어느 종교의 하나님이겠는가?

다른 종교가 주장하는 신은 이런 판단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한다. 오직 기독교의 하나님만이 이처럼 귀납적으로 제시된 하나님의 특성에 꼭 들어맞는다.

따라서 이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이 계신다면 그분은 분명히 기독교에서 경배하는 바로 그 하나님이다. 성경의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며 우리를 위해 희생하시는 사랑이 충만한 분이시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다. 인격적인 창조주는 기독교의 하나님이다. 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더욱이 인격적인 참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복 중의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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