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 5·18항쟁 때 어느 소녀는 극도의 혼란과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총에 맞아 죽어가는 엄마를 남겨둔 채 혼자서만 도망친다. 소녀는 혼란과 두려움 속에서 깨어나자 자신에게 벌어진 일, 그리고 자신이 죽어가는 엄마를 버렸다는 사실을 감당하지 못해 미쳐버린다. 소녀는 혼자 중얼거리고, 웃고 울며, 분노에 사로잡히고 이 남자, 저 남자와 쉽게 사랑에 빠져버린다. ‘산 자의 부끄러움’에 침잠한 것이다.(영화 ‘꽃잎’)

▨… 1980년 5월, 빛고을 광주에서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민주화를 위하여 목숨을 바쳤다. 하 많은 날들이 흐른 훗날, 사람들은 그날을 기린다며 5·18민주화운동이라는 이름을 선사하고 ‘산 자의 부끄러움’을 씻어버렸다. 흔히 사실은 그 자체로써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카(E.H.Carr)는 “사실은 역사가가 사실에 입김을 불어넣었을 경우에만 말하는 것이다”라고 정정했다.

▨… 평가가 다를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4·19에서 움이 돋기 시작했다면 5·18에서 비로소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고 표현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이땅의 민주주의는 4·19와 5·18이라는 항쟁과 투쟁의 소용돌이를 거쳐서 이뤄진 것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민주주의란 나무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끔직한 말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 현실이기도 하다.

▨… 가혹하더라도 우리 성결교회는 4·19와 5·18이라는 민주화 과정 앞에서 ‘산 자의 부끄러움’을 결코 씻어낼 수 없음을 고백해야 한다. 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성결교회는 역사와는 전혀 무관했었고 이것은 “정의를 하수같이 흐르게 하라”(암 5:4)는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못한 결과임도 고백해야 한다. 역사와 무관한 교회는 더 이상은 하나님의 교회일 수 없기 때문이다.

▨… “목련이 지는 것을 슬퍼하지 말라/ 피었다 지는 것이 목련뿐이랴/ 기쁨으로 피어나 눈물로 지는 것이/ 어디 목련뿐이랴/ 우리네 오월에는 목련보다/ 더 희고 정갈한 순백의 영혼들이/ 꽃잎처럼 떨어졌던 것을(이하 줄임, 박용주·‘목련이 진들’) 5·18의 ‘산 자의 부끄러움을’ 가슴에 새겨야 하는 때에 교단 총회를 열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역사의 교회라는 명제를 반추하라는 의미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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