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해군 때에 윤인은 가난한 선비로 살면서 꽤 덕망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사흘 굶어 담 아니 넘을 놈 없다”는 속담을 따르듯 이이첨의 수하에 들었다. 그후  윤인은 조정 안팎의 대소사에 언제나 중심에 서 있었다. 인목대비 폐모론에도 앞장섰다. 인조반정이 성공하자 윤인은 참형을 당했다. 그때 윤인이 한탄하며 한마디를 남겼다. “배고프고 추운 것을 10년만 참았더라면 오늘같은 일이 어찌 있었으리오.”(민병수, 다시 보는 한국인의 지혜)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박사와 하이드씨’가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려는 것은 무엇인가? 인간에게는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는 자아와 함께 자신만 알고 있는, 또 다른 자아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 아니겠는가. 플라톤도 ‘국가’에서 말했다. “만약 네가 자신의 주인이라면 동시에 너는 자신의 하인이기도 한 셈이다. 따라서 너는 스스로의 주인이자 하인이다.”

▨… 플라톤은 인간의 본성이 좋은 쪽(주인)과 나쁜 쪽(하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내가 나 자신의 주인이 되면 자제력을 잃지 않을 수 있는데 내가 하인으로 전락하면 자제력을 잃고 욕망의 노예가 되어버린다는 이해였다. 그러므로 내 안의 자아는 언제나 욕망이라는 자아를 적으로 해서 마주 서 있으며 이 싸움에서 지는 것이야말로 “가장 수치스러운 패배”라고 규정하였다.

▨… 윤인의 “배고프고 추운 10년”을 잘도 참으며 견디는 목사들이, 십자가의 부르심의 능력으로 꼿꼿하게 자신을 지키는 목사들이, 명예욕(?), 출세욕(?)의 하인으로 굴러떨어져서 마이크 잡으려고 아우성치고 노른자위 자리 차지하려고 여직껏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드러내는 계절이 돌아왔다. 일러서 총회의 계절, 똑똑한 논리가 언제나처럼 불의 혀가 되어 총회장을 삼킬 것이다.

▨… 사도 바울도 괴로워 했었다.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롬7:25)고 고백하면서…. 하물며 그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할 수 없는 이들이 총회의 계절에 윤인의 10년 때문에 너부러졌다고해서 누가 시비를 걸겠는가. 누가 비난하겠는가. 그래도 “길은 갈 탓 말은 할 탓”이라는데 비록 너부러지더라도 같은 주의 종이 가슴에 못 박는 일 만은 없는 총회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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