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요한 23세가 재위(1958~1963) 중에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열두 살 난 소년에게서였다. “장차 경찰관이나 교황이 되고 싶습니다. 둘 다 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할 수 없다면 둘 중에 하나로 진로를 결정하고 싶습니다. 이 중대한 문제에 현명한 충고를 해줄만한 분이 제게는 없습니다. 그래서 감히 교황님께 편지를 씁니다. 친절한 답장을 기다립니다.”

▨… 소년에게 교황의 답장이 도착했다. “먼저 경찰관이 되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해보아라. 경찰관의 일이라는 것이 아주 잘 마스터하지 않으면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교황이 되는 일은 네가 그런 노력을 해본 연후에도 얼마든지 다시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란다. 교황이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직책이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증거는 나 같은 사람이 지금 교황이 되어 있는 걸 보면 알지 않겠느냐."

▨… 요한 23세는 ‘나는 교황에 불과합니다’란 책에서도 그 면모가 소개되어 있지만,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를 소집하여 미·소의 냉전이 첨예화하고 핵전쟁의 위험이 치솟는 시대에 가톨릭 교회의 책임이 무엇인가를 물었던 교황으로 그 이름을 남겼다. G.구티에레스나 J.로이스 같은 해방신학자들은 해방신학의 출발점을 제2차 바티칸공의회로 잡고 있기도 하다.

▨… 이 요한 23세가 1960년 대의 미소냉전, 경제적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의 대립을 완화하기 위한 교회의 책임을 물으며 이렇게 말했었다. “저 개발국들을 눈앞에 두고서 자기 자신을 만민의 교회, 특별히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로서 제시해야 합니다.” 핵폭탄을 왜 만드느냐고 묻거나 미·소의 양대 강국이 왜 으르렁거리느냐고 질타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만민의 교회, 특별히 가난한 자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조금은 엉뚱한 결론을 제시했었다.

▨… 경찰관이 될까, 교황이 될까 엉뚱한(?) 고민에 사로잡힌 어린 소년에게 준 그의 충고는 지나치게 탈권위적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삶을 향한 그의 따뜻한 눈길은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이냐는 우리의 질문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가를 깨우쳐 준다. 남과 북이 핵폭탄으로 대립하는 우리의 상황에서 먼저 가난한 사람들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요한 23세의 처방은 유효한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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