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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운 법관 문기선 장로 ④
정의로운 법관생활
[896호] 2013년 04월 10일 (수) 22:00:36 이종무 목사(전 편집위원장) webmaster@kehcnews.co.kr

문 장로는 1945년 8월 15일 조국이 해방되자 우리나라를 위한 법관으로서 삶을 시작한다.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한 인재가 필요한 시기인 1945년부터 10년간 각처 법원장으로 근무했는데 청주지방법원 재직 당시 여당인 자유당의 비밀조직으로 부정선거를 자행한 태극도교주사건(太極道敎主事件)을 담당하여 실형선고를 내리기도 했다. 대전지방법원장 재직 중에는 부정선거로 기소된 대전부시장의 재판을 맡아 진행할 때는 자유당 정권의 압력을 물리치고 실형을 언도, 이로 인한 정치 탄압으로 전주지방법원으로 좌천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유명한 일화는 전주지방법원 재직 때에 당시 개표 부정을 한 이리시의 선거관리위원장을 폭행한 이철승(李哲承) 의원의 공무집행방해 사건을 맡아 재판할 때, 정치적 공세에 굴하지 않고 양심에 따라 이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 판결 사유는 개표 부정을 용인하는 것은 국가적 큰 죄이니 이철승 의원의 행위는 정의를 실현하려던 행위였다고 언도한 것이다. 그는 이 사건 이후 정권에 의해 판사 연임이 거부되어 퇴직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강직한 법관생활은 법조계뿐 아니라 정치계에서도 뜻 있는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법원 재직 시절에 전도 윤리 강연을 계속하여 당시 김병로 대법원장으로부터 “문 원장은 목사인가? 판사인가?” 라는 힐문을 받기도 했으나 그의 전도생활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청렴결백했던 그에게는 집 한 칸이 없었다. 그는 퇴직 후 거처할 집이 없어 부득이 부인을 큰 아들 집에 보내고 자기 자신은 대전에 사는 둘째 아들집에 얹혀살면서 변호사 사무소를 차렸다. 그 때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단 교주 박태선 장로가 부정사건으로 구속되었는데 박 장로의 측근이 그를 찾아와 300만환의 거금을 비밀리에 전달하면서 변호를 의뢰했다. 당시 법원장의 급료가 10만환 정도였으니까 고액임을 짐작을 할 수 있다. 그때 주변에서는 신앙 양심과 법률적 변론은 별개의 것이니 그 일을 맡아 집이나 한 채 마련해 보라고 권유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의 성결한 신앙 양심은 흔들림이 없었다.

4.19혁명 후 국회에서 그를 혁명재판소 소장으로 선출하고 통보하자 그는 수락여부를 놓고 기도하는데 “곧게 행하라”는 기도의 응답을 받은 후 그 직책을 수락했다. 그가 혁명재판소장 재임 시에 정부에서 7000만환을 판공비로 전달받았지만 재판관에겐 판공비가 필요 없다며 특별통장에 보관하여 반환하려고 했다. 이를 안 부하직원들이 나누어 갖자고 제안했으나 거절하자 오히려 모함을 당한 일도 있었다.

5.16 군사 쿠테타가 일어난 후 많은 정부의 고위 공직자와 사법부 고위층 사람들이 체포되었을 때 그가 관장했던 혁명재판소의 직원들은 한 사람도 체포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군사혁명위원회에서 감사를 나온 사람이 판공비의 용도를 물었을 때 그가 보관하고 있었던 통장을 내놓자 감사관은 이를 보고 나머지는 볼 것도 없다고 하여 무사했다고 한다. 청렴결백하여 올곧은 청백리의 본이 되었던 것이다.

그가 75세로 소천한 후 남긴 유산이란 수백 권의 책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신령한 복을 넘치게 주셨다. 평생을 공의와 진리로 살면서 주님의 영광만을 위한 그의 삶에 하나님께서는 심령의 평안과 육신의 건강과 가정의 축복으로 갚아주셨다. 그의 아들 3형제가 모두 고등고시에 합격하여 판사가 되니 훌륭한 판사집안이라는 평판이 자자했다.

그의 장남 문영극은 제주, 전주, 광주 지방법원 판사를 역임한 변호사로 혜화교회 장로로 시무했으며 차남 문영우는 청주, 강릉, 홍성법원 판사와 서울검찰청 검사를 역임한 변호사로 사랑교회 집사로 봉사했으며, 3남 문영길은 제주, 인천, 서울법원 판사, 원주법원장을 역임한 변호사로 신촌교회 장로로 시무하다 원로장로로 추대되었다. 문영길 장로는 성결교단 법률고문으로도 봉사했다. 그의 후손들이 신앙의 계승자로, 법관의 계승자로 훌륭하게 이어지는 신앙가문과 법조가문이 된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그의 순수한 신앙, 그의 성결한 삶이 낳은 아름다운 열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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