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25시, 전영규 목사 ① - 한국성결신문 한국성결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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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25시, 전영규 목사 ①
[857호] 2012년 06월 21일 (목) 15:11:28 성결신문 webmaster@kehcnews.co.kr

전영규 목사의 생애는 기막힌 파노라마다.

중국군, 중공군, 인민군, 한국군의 군복을 갈아입으며 수없이 사선을 넘나들어 불사조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는 빈민굴교회, 한강백사장난민의 어진 목자. 나환자자녀 후원자 결연, 홀트양자회 복음사역, 600여회의 간증과 부흥집회 등…. 복음사역에 자신을 불사른 순명의 목회자였다.

전영규 목사는 1932년 서울 아현동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한국은행 간부인 부친 전장석 씨의 4대 독자로서 비교적 부유하게 살았다. 1944년 12살 때 만주 조폐공사로 전근한 부친을 따라 만주 신경(新京)으로 이주했다.

1945년 해방을 맞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아버지가 일본의 관공서에서 근무했다 하여 친일파로 지목되어 죽음의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하지만 부친은 덕인이었기에 중국인의 도움으로 탈출했다.

풍족한 삶을 누렸던 전영규에게 인생역경의 서막이 오른다. 만주의 정국은 급변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쳐왔다. 소련군의 진주에 이어 공산군이 지배하게 되고 국부군과 공산군과의 치열한 내전의 와중에서 그의 가족은 해방된 고국으로 귀환을 결심했다. 한겨울 추위는 부족한 것 모르고 살았던 그의 가족을 고통스럽게 했다.

강풍에 지붕이 날아가 엄동설한 속에서 가족이 부둥켜안고 밤을 지새우기도 했다. 1946년 꿈에도 그리던 고국의 귀향을 위해 만주를 떠났던 그의 가족은 팔로군에게 잡혀 봉천(지금의 심양)으로 되돌아왔다. 고국행의 꿈이 물거품이 되자 실망감으로 몸부림쳐야했다.

결국 그의 가족은 거지소굴이나 다름없는 임시수용소에 수용되었다. 당장 생계가 시급하고 막막하여 소년 전영규는 사과장사로 나섰다. 4대독자로 귀하게만 자란 그로서는 장사가 녹록하지 않았다.

날씨가 추운 겨울철에는 사과장수보다 엿장수를 해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따미탕(大米糖)은 중국어로 쌀엿이다. 어린 나이에 엿판을 메고 영하 30도 넘는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며 “따미탕, 따미타앙, 쌀엿 사시오. 쌀엿 사시오”를 울어대듯 외쳤다.

서탑보통학교, 러시아정교회 사원, 한국인 예배당 근처, 더 멀리 북능(北陵)까지 퍼지도록 밤새도록 외쳐대니까 시끄럽다고 뛰쳐나와 무지막지한 주먹질과 발길질을 당해 허리가 동강날 만큼이나 아픔을 느끼며 땅바닥에 사지를 뻗고 엉엉 울기도 했다. 1947년 엿장수를 그만두고 삼성병원 조수로 일하게 되었다. 다행히 병원장이 한국인인데 그를 아들처럼 대해줬다.

중국의 내전에서 중공군이 승기를 잡아가자 조선 사람들은 만주가 공산당 천하가 되기 전에 고국으로 귀국하기 위해 크게 고심하고 있었다. 병원장은 전영규에게 자신의 가족과 함께 군용비행기로 천진까지 가서는 인천으로 함께 가지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는 가족을 수용소에 남겨두고 혼자만 따라갈 수가 없었다.

그는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부군사관후보생으로 입대했다. 그 길이 생존의 훌륭한 방책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나이 불과 15세였지만 국부군은 그렇게 부족한 장교인원을 보충하고 있었다. 1948년 9월 사관후보생훈련을 마치고 푸순지역 단위소대장으로 배속되었다.

그는 나이 어린 소대장에 대한 반발을 엄격한 군기로 통솔해 나갔다. 그해 9월 중순 전투에 투입되어 참전했으나 다음날 아침 부대가 포위되어 싸워보지도 못하고 중공군의 포로가 되었다. 온갖 고문과 회유 세뇌교육을 받았으나 중공군으로 전향을 거부했다.

그는 부대가 이동할 때 손을 뒤로 묶인 채로 탈출하여 수백리 길을 달려가서 국부군으로 귀대했다. 그의 탈출이야기를 들은 인사장교가 불사조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가 붙여준 별명이 그의 인생에 적중할 줄은 그도 몰랐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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