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사역을 기대하며

전도, 상생, 기본, 늦깎이, 이런 단어들이 연상된다. 시골에서 목회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조금 안다. 단독목회를 3년 감당해야 목사안수를 주던 시절, 시골에서 어렵고 힘든 목회를 했던 적이 있다.

이런 쥐꼬리만 한 소회를 가진 나에게 지금 늦은 나이에 신학을 하고 목회를 현장에서 감당하고 있는 분의 글을 읽으면서 무엇을 느끼겠는가?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싶지는 않지만, “안됐다”가 그 느낌일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안됨”에는 예수님 때문이라는 단서를 우리는 붙인다.

그래서 그 ‘안됨’은 감동이 되고, 우리에게 사명 고취의 사건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안됨에는 ‘항상 주님이 계시기에’라는 합리와 나 스스로 위로하며 견딘다. 모두가 그렇다.

심사하면서 ‘이런 합리’와 ‘스스로 위로’에 치우친 글은 배제했다. 그저 담담한 글, 진솔한 글이 마음에 끌린다. 그것이 더 정직해 보이기 때문이다. 이 글은 오늘 우리 목회의 아픈 상처를 잘 정리했다.

지금 목회는 인간 중심이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부인하지만, 우리는 지금 우리를 인간을 중심에 두고 목회하고, 신앙생활을 한다.

그래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신앙의 기본기, 종교 개혁가들이 주창했던 ‘오직 말씀’이 필요한 시대이다. 그것이 하나님, 예수님 중심의 목회를 가능케한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이 좋다. 무미하지만 건조하지 않고, 평이하지만 기본기에 충실한 목회자의 면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회하면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일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생각했는데 이 글은 그런 모습이 보인다. 안타까운 것은 그의 꿈이다.

그 첫 번째가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농사를 지은 후 남는 친환경 농산물을 어느 정도 소비해 줄 수 있는 교회를 찾아 서로 협력하는 일”이라고 했는데, 그 이면에는 결국 돈 문제로 회귀하는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저자는 글을 써 본 분이라는 생각이든다. 마지막 한 줄이 그렇다. 새댁이 오는 모양이다. 그래서 기대가 된다. 전도의 결과물을 기술해 놓은 것도 우리가 궁금한 것을 해결해 주는 아이템이지만, 또 우리에게 ‘앞으로’ 를 꿈꾸게 하는 글이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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