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순절의 영성이여!

조치원교회에 부임한 김동훈 전도사는 평소의 목회 습관대로 주일과 수요일 밤 예배 후에는 반드시 강대상에 엎드려 자정까지 심야기도를 했다. 자신의 온전한 성결과 신자 가정의 평화와 교회의 부흥, 그리고 나라 없는 슬픔에 목메어 조국의 회복을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그가 부임한지 6개월이 지난 1928년 9월 27일 수요일 저녁이었다. 기도회를 마친 그는 교회에서 심야기도를 하려다 문득 아내의 조카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내일 새벽에 서울 친정으로 간다는 아내의 말이 생각나 그를 챙겨주고 와서 기도하려고 자기 집으로 갔다.

아내는 친정나들이에 필요한 엽서 한 장, 옷 염색할 염료, 친정 아이에게 줄 과자를 사서 기도 마치고 올 때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그는 여러 가게에 들러 부탁한 물품을 사서 들고 골목길을 돌아 교회로 갔다. 그때 어두운 구석에서 어떤 여자가 그를 불렀다. “전도사님. 할 말이 있으니 이리 오세요.” 그는 놀라며 “할 말이 있으면 여기 와서 말해요.” 그러나 여자가 자꾸 자기에게 오라고 하자, 그는 “할 말이 있으면 내일 낮에 우리 집에 와서 말하시오”라고 말한 후, 교회를 향해 달려갔다.

그는 교회 마루에 엎드려 “주여, 시험을 이기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하고 기도를 시작했다. 바로 그때 갑자기 교회의 출입문이 활짝 열리는 소리에 놀라 돌아보니, 그 여자가 문지방에 걸터앉았다. 그가 일어나 가까이 가며 “무슨 말인지 빨리 하고 가시오”라고 하자, 그녀는 자기가 김 전도사를 짝사랑하니 자기 소원을 한번만 들어달라고 했다.

김 전도사가 놀라며 “빨리 집에 가지 않으면 당신 남편에게 알리겠다”고 엄포를 놓자. 여자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재빨리 도망을 갔다. 젊은 그녀는 첩살이로 품행이 좋지 않게 소문난 여자였다. 그는 문을 안으로 잠그고 유혹을 물리쳐주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그녀는 이 사실을 남편이 알게 될까봐 두려운 마음에서 악심을 품고, 남편에게 김 전도사를 무고했다. 즉 길에서 만난 김 전도사가 으슥한 곳에서 자기를 강간하려고 해서 소리쳐 도망했다는 것이다. 조치원의 소문난 깡패 남편은 첩의 말을 듣고 혈기를 못 이겨 즉시 길에 나가 김 전도사가 집으로 가는 골목길에서 그를 기다렸다.

자정이 되어 기도를 마친 김 전도사가 골목길에 나타나자 깡패는 다짜고짜로 달려들어 억센 주먹으로 김 전도사의 얼굴과 가슴을 때리고 발로 찼다. 그리고 길에 쓰러진 그의 얼굴을 또 발로 차고 몸을 짓밟았다. 그가 기절하자 깡패가 달아났다. 자정이 넘어도 돌아오지 않자 사모가 길에 쓰러진 피투성이 남편을 발견하고, 이웃 사람을 깨워 함께 병원으로 옮겨 응급치료를 했으나 시골병원에서 감당할 수 없다고 했다.

며칠 후 총회로 연락하자, 세브란스병원 차가 와서 서울로 호송하여 입원치료를 했다. 심한 구타로 인한 급성폐렴이었다. 위문하러 찾아 간 동료들이 “폭행자를 고발해 감옥살이를 시켜야 한다”고 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용서하라”고 했다. 당시 의술로는 어쩔 수 없어 그는 10월 16일에 29세의 젊은 나이에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았다.

장례식은 10월 19일 모교인 경성성서학원 강당에서 교수와 학생들의 애도 속에 거행됐다. 이때 조치원의 사회적 인사인 윤상문 씨와 박지혁 씨 두 사람이 장례식에 참석하여 각각 조사를 하면서 자기들도 곧 예수를 믿겠다고 약속했다. 김동훈 전도사는 성결한 교역자의 표상이었다. 그의 순절기념비가 조치원교회에 세워져 있고, 순절의 영성이 교회에 흐르고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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