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경북 상주시 내서면에 있는 상주봉천교회에 부임했다. 벌써 12년 전이다.
지은 지 40년도 더 된 사택은 허술하기 그지없었고, 몇 분 안 되는 어르신 성도님들이 꾸리는 교회재정은 열악하기만 했다.
사방이 산이고, 논이고, 나무들이었다. 아름답고 정겨운 시골 풍경이었지만 줄곧 도시에서만 지내 온 우리 가족에게는 낯설기만 했다.
까치가 울면 사슴이 답하고, 밤길을 운전하면 노루가 뛰어들고, 집 앞까지 내려오는 멧돼지가 무서워 밤이면 문을 걸어 잠그고, 모기와 이름 모를 날벌레들의 공격에 숨죽이는 일상은 낯선 것을 넘어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열심히 일했다. 지하수를 파고, 풀을 뽑고, 교회 곳곳을 청소했다. 예배가 있는 날이면 승합차를 운전하고 가서 교인들을 태워왔다.
사모는 주일 학교 어린이들과 몇 명 안되는 중학생들을 불러 떡볶이 파티를 열어주었다. 부활절에는 떡을 해서 나누어 먹었다. 가을에는 도시 교회의 찬양 팀을 불러서 집회도 열었다. 크리스마스 때는 예배당 의자를 앞으로 밀어놓고서는 이불을 깔고 윷놀이를 했다. 작고 소박하지만 소중한 시간이었다.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이들은 자라 도시로 떠나고, 어르신들만 남았다. 10명이 안 되는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연거푸 세 분이 소천하셨다.
이미 오랜 시간 병원과 요양원에서 시간을 보내셔서 예배에도 줄곧 나오지 못하셨기 때문에 그분들의 부음에 그다지 충격이 없으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하염없는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막막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한 잎 한 잎 손에 잡은 국화 꽃잎을 땅속 유골함 위로 떨어뜨리며 눈물도 함께 쏟았다. 이제 우리 교회는 오직 일곱 분의 성도만 남았다.
우리 교회는 과연 끝까지 남아있을 수 있을까? 나는 끝까지 목사라는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답도 없는 질문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한동안 혼란과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근 초등학교에서 그림책 읽어주는 봉사를 하던 사모가 다문화 아이들 소식을 전해주었다. 동네에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많이 있는데 기초학습이 너무 부족해서 학교 공부를 잘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베트남이나 필리핀 출신의 엄마들이 한국어에 익숙하지 못하니 아이들 공부를 봐주기 어렵고, 학습결손이 생겨도 집에서 보완을 해주지 못하니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
사모와 나는 아이들을 도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공부방을 운영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교회 뒤편에 공부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교회재정을 모두 긁어모아서 책상과 의자, 책꽂이 등 필요한 물품을 갖추었다. 아이들 7명이 모였다. 아이들의 학습결손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중학교에 진학할 6학년 아이가 영어알파벳도 몰랐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영어 파닉스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영어도 영어지만 수학은 더 심각했다. 5학년 아이에게 2학년 문제집을 놓고 설명을 시작해야 했다.
관심과 사랑에 목마른 아이들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교회에 오는 것을 즐거워했고, 교회에서 제공하는 소박한 간식에도 매우 기뻐하며 감사했다.
오가는 길이 즐거우니 즐겁게 공부했고, 어렵기만 했던 학교 공부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이제 공부방을 시작한 지 3년이 되어가는 지금, 아이들은 11명으로 늘어났고, 소문을 들은 다문화 가정의 부모들이 먼 곳에서도 자신의 자녀들을 공부방에 보내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의 학력 수준도 많이 상승하여 학교 공부에서도 자신감을 보인다. 아이들은 공부방에 오는 것을 너무나 즐거워하고 또 아이들을 더 보내고 싶다고 말하는 다른 가정들도 늘어나는 중이지만 교회의 공간이 협소하고 또 재정적으로 여의치 않아서 아이들을 더 많이 받지 못하고 있다.
다른 교회 집사님의 섬김으로 빈 창고를 교육관으로 개조하는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집사님이 사고를 당하시는 바람에 두 달 동안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집사님의 빠른 쾌유와 교육관 공사의 재개로 아이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빨리 만들어 줄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은 어르신들의 소천으로 상심하던 시간을 아이들을 바라보며 소망하는 시간으로 바꾸어주셨다. 고령의 어르신 성도 일곱 분을 바라보며 우리교회는 얼마나 오래 예배를 지속 할 수 있을까, 나는 얼마나 오래 목회자로 설교할 수 있을까 낙담하던 시간을 아이들을 가르치며 내일을 기대하는 시간으로 바꾸어주셨다.
아이들과 함께하는데 필요한 재정과 공간에 대한 염려도 하나님께서 감사와 기쁨으로 바꾸어주실 것을 믿는다.
12년 전, 나는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잔뜩 움츠러져 있는 사모와 아이들을 이끌고 시골 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붉은 뱀이 지나다니고 지하수가 말라 물이 나오지 않는 이곳 농촌의 환경은 정말 적응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무엇보다도 평균 연령이 이미 70대가 넘어버린 노인들만 두 세분 남아있는 교회를 기쁨으로 사랑하며, 거기에서 희망을 피워 올리고 꽃과 열매를 맺히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이 정말 막연한 꿈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수많은 연단의 시간을 거친 지금, 이제 작은 눈을 들어 하나님이 만들어 가시는 소망의 나라를 바라본다. 우리 공부방 아이들과 부모에게 그리고 이곳의 마을과 지역사회를 향하여 복음과 사랑이 넓고 깊게 펼쳐져 나가기를 기도한다. (요약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