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작은교회 목회수기 최우수작②
김범기 목사(서울서지방·오솔길교회)

파킨슨병 투병 중 개척 … 지역 위한 ‘노을음악회’ 열어
‘솔개 어린이야구단’ 운영 … ‘우리마을 복면가왕’도 진행

오솔길교회 제1회 노을음악회. 작은교회 베란다를 무대삼아 유명 음악가들이 부른 아름다운 노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오솔길교회 제1회 노을음악회. 작은교회 베란다를 무대삼아 유명 음악가들이 부른 아름다운 노래는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오솔길교회 개척

마흔셋, 한창 일할 나이에 갑자기 몸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파킨슨병의 증상이었습니다. ‘설마 젊은 나이에 이런 병이 올까 싶었으나 너무도 확연한 증상에 마음이 놓이지 않아 대학병원을 찾아갔습니다.

너무 젊은 나이라 의사조차 병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젊은 사람이 왜 여길 찾아왔냐고 고개를 갸웃하며 스트레스 너무 받지 말고 편히 지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설마’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질병에 대한 두려움, 생계에 대한 막막함이 밀려왔습니다. 무엇보다 큰 걱정은 3개월 된 막내였습니다. 부교역자 사역을 정리하고 부모님이 계신 동네로 이사를 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께 걱정을 안겨드리는 것이 죄스러웠지만 부모님이 가까이 계신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2년간 치료를 받으며 체력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생계를 위한 일을 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목회자가 아닌 평신도로 교회를 섬기며 목회에 대한 갈망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진정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건강한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수많은 질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비록 아픈 몸이지만 하나님께서 개척의 길로 인도하신다면…, 이런 몸이라도 쓰시겠다 하신다면…, 기꺼이 그 길을 가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2017년 4월 9일에 오솔길교회 첫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천천히 걷는 삶’이란 주제로 첫 설교를 했습니다. 비록 작고 연약하지만, 부족하고 나약하지만 그래서 남들처럼 빨리 달릴 수 없고, 남들처럼 대단한 일들을 이루어낼 수는 없지만 예수님과 함께 천천히 걸으며 예수님을 깊이 알아가는 삶으로 나아가겠다는 고백을 담아 전하였습니다.

함께 하는 분들이 깊이 공감해주셨고, 그 고백은 지금까지 ‘오솔길교회’를 ‘오솔길교회’답게 만드는 목회철학이 되고 있습니다.

오솔길교회 개척 4주년 주일에 전교인이 함께.
오솔길교회 개척 4주년 주일에 전교인이 함께.

 

기적의 역사

‘오솔길교회’가 시작된 지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세상에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교회가 있겠습니까만 ‘오솔길교회’는 특별한 기적 같은 은혜가 너무나 많았고, 그 기적의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내가 만일 성도라면 불치병을 가진 목회자가 사역하는 교회에 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내가 만일 성도라면 15평 남짓 작은 예배당에 등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성도들은 저와 같지 않았습니다. 불치병을 가진 목사가 목회하는 15평 개척교회를 기꺼이 찾아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코로나가 발생하기 전, 등록 성도는 목회자 가정과 어린이 포함 29명이 되었습니다. 15평 남짓한 예배당은 생각보다 작습니다. 20명만 모여도 앉을 자리가 부족합니다. 좀 더 많은 인원이 모일 수 있는 넓은 공간이 필요해졌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이던지요.

새로운 성전을 마련하려면 얼마나 힘들까? 재정은 다 어디서 확보해야 할까? 등의 수고에 대한 염려보다 함께 하는 성도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오솔길교회’가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습니다.

지병의 악화로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도 예수님과 함께 천천히 걷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돌아보면 ‘노을 음악회’는 마치 꿈처럼 이루어졌습니다.

시·교육청 예산 2,000만원을 지원받아 진행한 ‘솔개어린이야구단’은 기적처럼 실현되었습니다. ‘어린이 그림 그리는 날’ 개최와 지역신문 ‘오솔길 이야기’ 발행까지 정말 많은 간증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무엇하나 힘들지 않고, 쉬이 진행되는 일이 없었으나 고비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였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 라는 말씀처럼 어려움이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니 어려움이 오히려 유익이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추수감사절 예배
추수감사절 예배

 

코로나와 성전부지 매입  

개척 2년 만에 성전부지를 매입했습니다. 물론 저의 계획에는 전혀 없던 일이었습니다. 하기야 개척과정도 그러했지요. 우리 삶이 어디 계획대로 되는 일이 있나요. 정말 우연한 기회로 신도시 창릉 인근에 있는 대지 180㎡를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성전부지를 마련했다는 기쁨도 잠시, 건축에 부담을 가진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건축헌금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는데 ‘돈이 없으면 신앙생활도 못하겠다’며 함께 나오던 아이들과 교회 출석을 그만두셨습니다.

몇몇 어르신들 역시 불편해하시다가 코로나 이후로는 발길을 끊으셨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졌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성도와 금전적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오솔길교회 어린이 그림전
오솔길교회 어린이 그림전

부부가 함께 출석하던 분들이었는데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고 교회를 섬기셨습니다. 내심 ‘오솔길교회’의 평신도지도자로 세우려 기대하고 있던 분이었습니다. 두 분은 ‘오솔길교회’에 오기 전에 목회자에게 상처를 받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등록하시기까지 어려움이 많았는데 지속적인 교제 끝에 마음을 열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정말 열심히 연약한 교회와 아픈 목회자를 섬겨주셨습니다. 두 분이 임대아파트에 입주하게 되었는데 보증금이 부족해 저에게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어렵게 임대아파트에 선발되셨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입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워낙 경제적으로 어려우신 분들이라 거금을 마련하는 일이 힘들다는 것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오죽하면 개척교회 아픈 목사에게 부탁하셨을까…. 그 심정을 백번 이해하고 남았습니다.

하여, 고민 끝에 성도와 돈거래를 하면 성도도 잃고 돈도 잃는다는 선배 목사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돈을 마련해 드려야겠다 결심하였습니다. 사모에게는 말도 꺼내지 못했습니다. 혼자 아이들 보험료 환급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아 두 분께 드렸습니다. 만일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 해도 두 분이 계속 교회를 섬길 수 있다면 감사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전 목회자에게 받은 상처를 이렇게라도 치유 받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저의 기대와는 달리 코로나 이후 두 분은 교회 출석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남편분이 사람을 많이 만나는 직업이라 교회 출석이 어렵다 하셨습니다. 아내분은 가끔 출석하시며 빌린 돈을 조금씩 갚으시더니 마지막 상환을 끝으로 교회에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주변 분들은 그나마 돈을 잃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저는 두 분을 잃은 것이 너무 가슴 아팠습니다. ‘오솔길교회’의 기둥이셨던 두 분을 보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아직도 두 분을 위해 기도합니다. 어디에 계시든지 부족한 목회자 때문에 실망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놓지 않으시길,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 안에 평안하시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교회부지마련과 건축의 부담으로 가족이 떠나고, 안타까운 마음에 돈을 빌려드린 일로 두 분이 떠나고…, 떠난 분들의 빈자리가 컸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의 빈자리는 오래 계속되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목회자를 위로하며 남아주신 분들이 더욱 열심히 교회를 섬겨주셨습니다. 비록 열다섯 명의 적은 숫자이지만 그분들은 저에게 기드온과 함께한 300명 용사와 같습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오솔길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구별된 성도들입니다.

생사를 함께한 전우들의 끈끈한 전우애처럼 고비고비를 함께하며 더욱 깊어지고 단단해진 사랑이 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어려움을 만나지만 ‘오솔길교회’는 더욱 든든히 성장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수가 줄었음에도 감사한 이유입니다.

제2회 노을음악회
제2회 노을음악회

꿈꾸던 음악회, 꿈처럼 이뤄

대학 때 성악을 공부한 덕에 주변에 음악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알던 몇몇 지인들은 음악이나 방송계통에서 꽤 유명한 사람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지인들을 불러 음악회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너무 오랜만이라 연락이 잘 될지, 우리 교회 음악회에 출연해달라고 하면 승낙해줄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부딪혀보기로 했습니다. 저의 개인적 사정과 그간 교회의 어려움을 털어놓으며 꼭 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모두 흔쾌히 허락해주었습니다. 저명한 연주자들이 섭외되었습니다. 그분들의 명성에 맞는 멋진 무대를 만들어 드릴 수는 없었으나 최선을 다해 음향과 조명을 준비했습니다.

상가교회 발코니 문을 열고 그분들이 등장하자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수준 높은 음악회를 직접 보니 놀랍기 그지없었습니다. 어떤 어르신은 ‘우리가 보기에는 너무 과분한 음악회’라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하셨습니다. ‘오솔길교회’가 지역주민들에서 선사한 음악회는 대성공이었습니다.

2회 음악회는 1회의 성공에 힘입어 외부의 후원도 늘고 1회 때는 없던 등록 교인도 생기면서 스텝이 생겨났습니다. 마을의 연주자들을 발굴하고 교회를 통해 지역의 몇몇 이웃들을 섭외해 마을합창단을 만들어 연주 1년 전부터 연습을 했습니다. 단지 오솔길교회의 행사가 아니라, 단 2회 만에 마을의 축제가 되었습니다. 소문이 난 것인지, 누군가 연락을 했는지 알 수 없으나 음악회에 시장, 지역구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 동장 등 지역의 유력인사들이 참여하고 500여명 주민들이 참석하여 교회가 준비한 선한 영향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서 이런 일도 하네?

이제 제3회 음악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60여 명의 출연자, 30여 명의 스텝, 1,000만 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큰 행사입니다. 오페라 두 편과 뮤지컬, 영화음악 등을 공연할 예정입니다.

사람들은 음악회의 규모를 보면서 놀라기도 하지만, 이런 규모의 음악회를 주최하는 교회가 15명 성도의 4년 된 개척교회라는 사실에 더 놀랍니다. 심지어 그 교회의 담임목사가 하루에 7시간밖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파킨슨병 환자라는 사실에 기막혀합니다.

3회 음악회를 준비하면서 특별히 어린이들의 등장을 연출했습니다. ‘오솔길교회’ 어린이들 3명을 제외하고 5명의 어린이를 공개모집을 통해 선발했습니다. 1명은 선교사님의 아이, 1명은 타 교회, 2명은 믿음 생활을 하다가 방학한 가정의 아이들, 그리고 나머지 1명은 믿지 않는 가정의 아이입니다. 출연자 모임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출석하는 모습을 보며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렇게 교회와 가까워지다 보면 하나님과 만날 날이 오겠지요. 그들의 마음에 뿌려지는 복음의 씨앗을 보며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교회에서 이런 일도 하네?’라는 말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입에서 나오게 하고 싶습니다. 개교회의 성장과 부의 축적을 위해 내부적으로만 모이는 교회가 아닌, 밖으로 흘려보낼 수 있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저 교회에 가면 항상 음악이 있고, 커피를 마시며 두런두런 살아가는 이야기 하나님 이야기 들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교회 벽이 그리 높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마을 복면가왕

멋진 일은 계속됩니다. ‘고양시 마을공동체지원센터’ 프로젝트에 제안한 마을공동체의 프로그램이 선정되어 900여 만원을 지원받아 주민들을 대상으로 ‘우리 마을 복면가왕’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주민 판정단 5명을 선발했는데, 그중 한 50대 여성분과 통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목사라는 신분을 밝히자 “목사님이세요?”라며 깜짝 놀라셨습니다. “목사는 이런 거 하면 안 되나요?” 하며 웃었더니 전화기 넘어 목소리가 밝습니다. “아니요, 저도 신앙생활 하고 있는데요, 목사님이 이런 걸 하시니 너무 좋아서요.” 하나님의 위로 같아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아픕니다. 약 기운이 떨어지면 한 발자국 움직이는 것이 한국에서 미국을 가는 것만큼이나 멀게 느껴집니다. 기운이 빠져 절뚝거리며 걸어가면 사람들의 편치 않은 시선도 느껴집니다.

아프지 않아서, 시간이 많아서 음악회하고 주민 가요대회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 아내와 아이들이 가족은 안 돌보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일만 한다며 싫은 소리도 듣지만 괜찮습니다.

그저 몸이 아프니 오늘이 내 사역의 마지막 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의 평화를 누리고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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