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작은교회 목회수기 최우수작①
-조순미 목사(인천동지방, 올리브나무교회)
코로나가 두려웠던 이유는 모르기 때문이다.
원인도 모르고, 치료도 모르고, 예후도 모른다. 불확실한 시대에 사는 인간들은 항상 막연한 두려움을 기본적으로 안고 살아가고 있는데, 여기에 더해진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은 전 세계를 마비시켰다. 온 세계가 처음 당하는 일이었고, 교회도 처음 당하는 일이었기에 두려움이 더 컸다.
지금도 여전히 코로나 시대이며 매일 1,000명의 확진자가 발생하나 처음처럼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문제를 직시했고, 그 속에서 살아봤기 때문이다. 코로나로 인해 다들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특히 작은교회들의 어려움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너무 외롭고 고독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고독한 기도와 고독한 예배를 경험하고 나니 잃어버리고, 놓쳐 버린 것들을 다시 찾는 기회가 되었다.
코로나는 핑계 대기가 너무 좋았다. 예배를 안 드려도 되고, 심방을 안 해도 되고, 전도와 교육을 안 해도 되었다.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놓은 종처럼 그냥 버티기만 해도 되었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코로나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하나님이 내게 준 도전은 “모험을 해라, 조심조심 사는 삶은 비참한 것이다. 모험을 가장 많이 한 사람에게 더 주어라”였다. (메시지 성경 마태복음 25장)
나는 모험을 시작했다. 그리고 내 주인을 믿었다. 어떤 결과가 오더라도 주인을 믿고 모험을 하는 나를 칭찬 해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 결과 우리 올리브나무라는 작은 공동체는 코로나특수를 누렸다.
코로나 전에 20여 명 예배했던 인원이 지금은 50명 이상으로 늘었다. 몸과 마음이 빈곤하고 지칠 대로 지친 부부와 가정들, 우울과 자살 충동, 틱장애로 어려움을 겪는 자녀들이 몰려왔다. 하나님은 코로나 시대 에도 살아계시며 교회를 다스리심을 보여주셨다. 지금부터 코로나 기간에 있었던 믿음의 모험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심방과 ‘복음의 집’ 이름짓기
교회에 자유롭게 모여서 예배하고 모임을 할 수 없게 되는 시간이 길어지자 성도 가정의 예배의 힘, 복음의 힘을 길러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성도들의 가정을 ‘복음의 집’으로 명명하고 이름을 지어주고 그 자리가 예배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선포했다.
부활의 생명이 필요한 집은 ‘부활 생명의 집’, 기쁨이 필요한 집은 ‘카라의 집’(헬라어 희락), 하나님이 만들어주길 바라는 집은 ‘토기장이의 집’, 사랑과 헌신이 깊은 집은 ‘옥합의 집’, 평안함이 필요한 집은 ‘샬롬의 집’, 예수의 깊은 흔적이 필요한 집은 ‘스티그마의 집’, 천국 소망을 바라는 집은 ‘천국의 집’, 주의 빛이 필요한 집은 ‘빛나는 집’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집에서부터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꿈을 꾸게 했다. 그리하여 각 가정에 큐티와 가정 예배가 회복되고, 결국 어디서나 예배 할 수 있는 가정으로 세워지는 계기가 되었다.
방역수칙이 10명 이내로 예배해야 할 때는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성도들 복음의 집을 심방 했다. 영상 예배 중에 깨달은 것을 나누고, 각 가정의 기도 제목에 따라 함께 기도하고, 온라인 헌금을 못 하는 성도들의 예물을 받았다.
주일 오후부터 심방 하면 세 가정은 심방이 가능했다. 매주 조를 짜서 반복하였고 어떤 집은 주중에 심방을 하였다. 영상 예배의 아쉬운 부분을 목회자가 직접 찾아가 기도와 나눔으로 채우니 오히려 은혜가 차고 넘쳤다.
성경공부와 양육
코로나로 5인 이상의 모임이 금지되었기에 일대일, 부부 양육, 제자 양육을 개인적으로 만나서 했다. 거의 매일 양육이 진행되었다.
특히 틱장애와 자살 충동, 우울증으로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을 정기적으로 만나 복음과 말씀에 확신을 심어주고 기도해주었다. 동시에 부모들이 함께 바로 세워져야 했기에 따로 양육과 기도 모임을 하였다.
점점 양육이 많아짐으로 인해 혼자 감당할 수가 없어 몇몇 성도들을 양육자로 훈련하여 함께 생명을 살리는 일을 시작했다. 이로 인해 아이들이 우울증, 자살 충동을 극복하고 틱장애도 없어졌으며, 가정에도 부부관계, 자녀 관계가 회복되는 놀라운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로 인하여 교회는 매주 간증과 감사의 고백이 넘쳐나고, 양육을 담당했던 성도들도 너무 큰 기쁨과 확신을 얻게 되었다.
이런 간증과 영혼 살리는 일들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계속되고 있다. 새가족이 왔을 때는 5주 동안 더 철저히 기초과정과 2단계, 3단계 성경공부를 진행했다. 1년이 넘으니 정착률이 90% 이상이 되었다.
부부관계로 어려움을 겪는 부부는 마더와이즈, 제자 양육 책을 가지고 매주 목요일 밤에 만나 1년 이상 양육을 하였더니 부부관계가 회복되었다. 아기를 낳는 축복까지 주셔서 이번 어린이날 첫 유아 세례식을 하게 되었다.
신앙적으로 갈등이 있어 하나 되지 못했던 부부는 양육을 통해 서로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성령 안에서 하나 되는 놀라운 일도 벌어졌다.
독거노인 반찬 배달과 무료 도시락 급식
인천 부개동의 마지막 재개발지구에 있는 우리교회는 독거노인과 결손가정이 밀집된 지역이다. 그리하여 3년 전부터 독거노인 반찬을 10가정에 배달했다.
코로나가 심할 때는 준비를 위한 모임도 어려워 라면, 김, 햇반, 일회용 국 등의 간편식으로 배달하였다. 코로나 사정이 좀 나아지면 최소의 인원이 모여 반찬을 만들어 전해드렸다. 이렇게 어려울 때도 여전히 반찬이 배달되는 모습에 어르신들이 정말 고마워하셨다.
지역에 동사무소 직원들도 교회를 방문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하였다. 올해부터 반찬뿐 아니라 무료도시락을 배달하고 있다. 마을에 어려운 노인들이 따뜻한 밥 한 끼라도 편히 드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코로나로 교회의 이미지가 추락하여 마음이 아프기도 하였고, 마을에 어려운 어르신들이 더욱더 많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찬 봉사를 하는 날 조금만 더 수고하면 어른들이 잠시라도 행복하실 수 있을 것 같다 생각이 드니 마음이 바빠졌다. 고맙게도 모든 성도가 한마음으로 순종하였고, 마치 응답이라도 한 듯, 여기저기 쌀과 반찬값들이 후원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반찬 배달과 무료급식을 할 때 성도들과 한 약속이 있었다. 이분들을 전도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계산하지 않고, 뭔가 요구하지도 말고, 값없이 사랑을 흘려 보내드리자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오래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비록 두 주에 한 번이지만 따뜻한 밥을 드시며 잠시라도 행복하시길, 그리고 우리 마을에 당신들을 위해 기도하며 축복하는 교회가 있다는 것을 알게만 하자는 것이었다.
수요일 12시 30분이면 마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교회 마당으로 모이신다. 그분들에게 도시락을 전하며 기도를 꼭 해드린다. 하나님께서 어르신들의 삶을 지금까지 인도해 주심에 감사하고, 교회가 드릴 수 있는 것은 밥 한 끼지만 영원한 밥,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하고 한 분 한 분 나누어드린다.
처음에 15개의 도시락을 준비했지만, 지금은 35개의 도시락과 10가정 반찬 배달을 한다. 2명의 성도가 반찬을 미리 만들어 오면, 15명의 성도가 수요일 오전에 수요예배를 드리고 난 후 정각 12시 30분에 도시락을 드린다. 우리 교회의 작은 섬김이 소문이 났다.
우리 성도들이 지나갈 때는 어른들이 먼저 인사해주시고, 주차 자리도 마련해 주신다. 어떤 분은 교회에 헌금도 하고 가시며, 예쁜 화분과 꽃도 놓고 가신다. 교회와 마을이 점점 하나가 되고 있다. 언젠가 어른들을 모시고 노인대학을 열고 싶은 마음이 든다.
기부카페 운영
성도들의 일거리 창출과 마을 전도 장소 및 주일에는 교육관으로 사용하기 위해 2020년 7월부터 교회 인근에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신선하고 질 좋은 커피를 저렴에 즐기면서 편하게 대화할 수 있고, 바리스타로 일하는 성도들이 말동무와 인생 상담을 해주기도 한다.
카페에서 작은 수고비를 받으며 일하던 성도들이 모두 자원봉사로 전환하면서 카페의 수익금 전액을 무료도시락 급식의 비용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마을과 카페 손님에게 공지하고 5월부터 기부카페로 운영을 하고 있는데, 이 또한 자연스럽게 마을에 그리스도의 향기와 교회의 좋은 소문이 돌게 하고 있다.
오히려 기부카페를 한 후에 손님이 더 많아지고 있으며, 이렇게 좋은 일을 어떻게 작은 교회에서 하냐면서 오히려 음료값 외에 기부까지 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봉사자는 봉사자대로 카페 오시는 손님들은 손님대로 돈을 내는 사람이나 돈을 받는 사람이나 기쁨이 두 배가 되고 있다.
어려운 학생들 장학금 지급
코로나로 교회 안에 어려운 가정들이 더 많이 늘어났다. 우리 교회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어려운 시기를 보릿고개 넘기듯 다 같이 먹고 다 같이 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아빠가 직업을 잃은 가정, 한부모 가정 청소년 6명에게 매월 10만 원씩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지수와 민준이는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로, 엄마가 15년째 신부전증으로 투병하며 어렵게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매월 지급하는 장학금이 큰 위로와 힘이 되었는지 아이의 엄마가 교회에 마음을 활짝 열었다.
그러나 올해 3월에 아이들의 엄마가 코로나 분위기 속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해 갑작스럽게 소천하게 되었다.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집으로 찾아갔을 때, 아이들의 엄마는 마지막 유언으로 이 아이들을 목사님께 맡겨도 되겠냐고 했다. 1초의 주저함도 없이 그러겠노라고 했다.
아이들 생각에 눈도 못 감는 엄마에게 교회에서 아이들을 돌보겠노라 약속을 하고 마지막 기도를 해주었고, 엄마는 다음날 편안히 눈을 감았다. 개척한 이후로 처음 교회장으로 장례예식을 치른 후에, 온 교회가 아이들을 돕기 위해 마음을 모았다. 700만원의 헌금이 모였다. 다행히 두 아이를 위한 집을 주택공사에서 제공해 주었다.
15년 동안 아픈 엄마와 지하 방에서 제대로 된 살림살이 하나 없이 살아온 아이들에게 예쁜 침대와 책상을 비롯하여 살림살이를 준비해주었다. 이사도 온 교인들이 힘을 모아 해주었다. 아이들은 엄마의 빈 자리는 성도들의 사랑으로 조금이나마 채워가고 있다.
지수와 민준이 집의 이름은 ‘아바아버지집’이다. 하나님이 아이들의 참부모 참주인이 되어주시길 축복하며 지었다. 코로나로 힘든 시기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올리브나무교회’에 너무 많은 열매와 축복을 주셨다.
무엇보다 가장 큰 열매는 나 자신이다. 내가 제일 많이 회개하고 제일 많이 울었다. 진작 이렇게 기도하고, 진작 이렇게 나 자신을 돌아보며, 성도들 한 명 한 명을 양육해야 했다. 나는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행복한 목사가 되었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두려움은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직면하는 것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이제 어떤 어려움이 와도 내 주인을 믿고 모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수기를 통하여 코로나 위기 속에 부어주신 은혜들을 하나하나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내 삶에 당연한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을 기억하고 기록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본교회와 한국성결신문에 감사의 마음을 올려 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