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람산, 비아돌로로사서 고뇌와 고난 묵상
늦은 밤 찾은 베들레헴서 탄생 감격 찾기도

이스라엘은 ‘성스러운 땅(聖地)’으로 불린다. 많은 목회자들과 교회 중직자들이 방문하기를 소망하고 한번 쯤 방문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한번 쯤 성서의 현장 이스라엘을 둘러보고픈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11월 2일부터 10일까지 8박 9일간 다녀온 성서의 현장 이스라엘(예루살렘, 갈릴리, 하이파, 욥바, 텔아비브 등)의 모습을 3회에 걸쳐 연재한다.-편집자

이스라엘이 위치한 팔레스타인 땅은 성서 이야기의 무대요 현장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과거를 살아간 성서 속 인물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이야기하며, 그 과정을 통해 오늘의 우리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성서의 현장을 찾는 것은 그래서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자신의 신앙과 삶을 되돌아보는 ‘순례’요, 예수를 만나고 그 분의 삶을 체현하는 길이기도 하다.
 

감람산에 올라
예루살렘의 옛 영화를 떠올리다

▲만국교회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중부 산악지대에 위치해 있다. 800m 결코 높지 않은 산지 위에 세워진 예루살렘은 여부스 부족의 땅을 다윗왕이 점령하면서 이스라엘 역사 전면에 등장했다. 솔로몬 시대 하나님의 성전이 세워진 예루살렘은 가장 중요한 신앙의 성지요, 삶의 공간이다. 하지만 이곳은 2000년 동안 20여 차례나 주인이 바뀌고, 10여 차례나 완전히 파괴된 비운의 땅이기도 하다.

예루살렘을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곳, 그곳에 감람산(올리브산)이 있다. 감람산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을 보시고 우시며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라’(눅 19:41~44, 막 13장)고 말씀하셨던 곳이며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핏방울이 떨어지도록 기도했던 곳이다.

감람산 정상 전망대에서 옛 예루살렘성(Old City)을 내려다보며 ‘예루살렘의 영화’를 머릿속에 그려본다.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 화려한 다윗성과 솔로몬의 왕궁, 헤롯의 왕궁이 있었던 예루살렘은 유대인들의 무덤과 어울려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유대인, 기독교, 이슬람, 아르메니아정교회 등 4개 구역으로 나뉜 예루살렘 옛 도시(올드시티)를 보면서 가슴이 미어져 온다.

감람산에는 예수님이 눈물 흘렸음을 기억하는 ‘눈물교회’와 피눈물을 쏟은 현장을 지켜봤을 감람나무들이 있는 겟세마네동산, 겟세마네교회(만국교회), 한국어 등 전 세계 70여개 국가의 주기도문이 내걸린 주기도문교회, 성모마리아의 무덤, 선지자들의 무덤, 주님승천교회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믿기는 어렵지만 겟세마네동산에는 유전자 검사결과 수령이 2000년이 넘은 감람나무 여덟 그루가 있다고 한다. 이들 중 일부는 ‘예수님의 기도장면을 보았지 않았을까’하는 점에서 관심이 쏠린다.

비아돌로로사에서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다

기독교인이 가장 많이 찾는 예루살렘 순례지는 십자가의 길이라 불리는 ‘비아돌로로사’(Via Dolorosa, 라틴어로 고난의 길을 말함)이다. 빌라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으신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매고 걸었고 그곳에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묻히셨다.

약 800m의 비아돌로로사는 쉬지 않고 걷는다면 10분 정도 길이요, 예수님의 흔적을 쫓아가더라도 1시간 정도의 가까운 거리다. 사실 비아돌로로사는 예루살렘에 와 본 적 없는 한 유럽 그리스도인이 16세기에 소문과 문서만으로 추정해 놓은 곳이란 점에서 예수님의 길이냐는 점은 의문이다. 그렇지만 전혀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의문 반, 믿음 반을 가지고 걷는다.

좁은 시장통 사잇길은 아랍상인들의 손님 청하는 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조용한 묵상의 흐름은 손님 청하는 소리에 깨어지고 지갑과 짐(카메라 가방)에 신경쓰다보니 물 건너가 버린다. 이를 피해 새벽 시간에 이 길을 걸었던 모 지방 순례팀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마도 이런 팀이 많았을 것이다.

비아돌로로사에는 14곳의 기념장소가 만들어져 있다. 각 처소에서 조용히 눈을 감는다. 성서와 고대 전승에 따라 마련된 처소는 ‘기억의 흔적’을 통해 그리스도를 삶을 더 깊이 묵상하려는 선조들의 신앙이 새겨져 있음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옷이 벗겨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달리시고 죽으신 곳, 그리고 무덤교회(성분묘교회)는 수많은 순례객으로 붐볐다. 그들은 주님의 십자가가 세워진 곳과 시신을 염한 돌판, 무덤의 돌을 만지며 예수의 흔적을 느끼려 한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 등이 안식 후 첫날 무덤을 찾았던 그때처럼 성서는 말한다. ‘주님은 여기 계시지 않다’.

비아돌로로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걸으신 고난의 길을 걷는 것 자체만으로 감격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이 부럽다.
 
최후 만찬장과 마가의 다락방에서
온기와 성령의 불길을 찾아보다

옛 예루살렘 성전 안에 있었지만 지금은 예루살렘 시온문 밖에 있는 최후의 만찬 기념교회와 성모영면 성당을 들렀다. 이곳에 최후의 만찬과 오순절 성령세례가 임한 마가의 다락방, 그리고 그 아래 다윗의 무덤이 있다.

2층의 높은 천장은 최후의 만찬장이나 마가 다락방으로 규정할 수 없었다. 예수시대 이후 중세를 거치며 수차례의 변화를 인정해야 했다. 12명의 제자들과 예수를 따르던 몇몇이 둘러 않아 식사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이곳에서 예수와 제자들은 떡을 떼고 잔을 나누었을 것이다.

만찬장 바닥에 손을 대고 온기를 느끼려 했지만 차가운 기운만이 올라온다. 2000년전 만찬 현장의 온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굳게 닫힌 만찬 장 옆 마가의 다락방을 창문 틈으로 볼 수밖에 없어 아쉬움은 컸다. 예수 승천 후 120여 성도들에게 오순절 성령강림이 임했고 그들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계를 향해 뻗어나간 현장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윗의 무덤이 만찬장 아래 위치한 것은 의외다. 40여년간 예루살렘을 통치하고 다윗성에 장사된 그의 무덤 위로 성령이 임했다니, 아이러니다. 다윗의 무덤은 유대인 기도 장소 중 하나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대망하는 그들은 토라를 외고 기도하며 ‘어서 오시옵소서’를 외친다. ‘키파’를 쓴 정통 유대인의 토라 암송 모습을 무덤덤한 모습으로 지나친다. (예수)무덤교회와는 또 다른 미묘한 느낌이 스친다.

통곡의 벽에서
‘회복’과 ‘평화’를 위해 기도하다

통곡의 벽은 유대인에게 가장 성스러운 장소의 하나다. 기원후 70년 로마군에 의해 파괴되고 유일하게 남은 성전의 서쪽 벽을 부여잡고 유대인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통곡의 벽 안쪽, 옛 성전 서쪽 벽의 흔적이 남은 곳에서 정통 유대인들이 토라를 읽고 있다. 고개를 흔들며 성경을 읽는 열심은 한국교회 성도들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종교적 열심, 꼭 긍정적이지 않지만 감동을 받았다.

‘남여 평등’의 사회에서 전통 때문에 남여를 구분하는 모습도 안타깝지만 벽 안에 꾸역꾸역 집어넣은 기도문이나 소원문 등도 형식화한 바리새적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삶’과 ‘행함’의 열매로 결실맺지 못하는 형식화된 종교는 다시는 열매 맺지 못하도록 말라버릴 무화과나무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기독교인들도 통곡의 벽을 찾아 기도한 후 발걸음을 돌린다. 조용히 이 땅의 평화를 위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마음을 모은다. 주 예수여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시옵소서.

밤 늦은 시간
베들레헴에서 예수의 흔적을 쫓다

오후 8시를 넘겨 김진산 목사의 도움으로 베들레헴으로 향했다. 예루살렘에서 8km 떨어져 있어 차로 10분 밖에 걸리지 않지만 베들레헴은 성탄절에는 수만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어 발 디딜 틈조차 없다고 한다. 지금은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에 속한 이 곳은 두꺼운 장벽으로 둘러싸여 매일 아침과 저녁 출퇴근 시간에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긴 행렬이 늘어서는 곳이다.

이스라엘 군을 지나 들어선 베들레헴에서 한국인 방문객이 주로 찾는 곳은 베들레헴 주님 탄생 기념교회다. 허리를 반쯤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좁은 문을 거쳐 실내에 들어서면 예수님을 누인 자리가 표시되어 있다. 또한 제롬이 라틴어로 번역한 ‘불가타역’이 탄생한 것을 기념해 제롬의 동상이 한 곁에 세워져 있다.

밤늦은 시간에 아랍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경계심이 생겨 움츠려 든다. 밤늦은 시간에 유숙할 곳을 찾아 이곳저곳을 기웃거렸을 요셉과 마리아의 모습이 나와 같지는 않았을까 생각했다. 동방박사를 안내한 별의 흔적을 찾기 위해 하늘을 본다. 아, 이곳이 평화의 사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난 곳이구나. 그곳에 내가 있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한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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