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교단의 기준에 비춰보면 작지만 자립한 교회라고 볼 수 있는 어느 교회의 담임 목사가 자신의 목회 멘토인 노(老)목사에게 물었다. “목사님, 제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요? 방역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며 예배를 드렸고, 대면예배는 안된다고 해서 동영상 예배를 드렸는데 더는 버티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언제이든 다시 대면예배를 드리게 되면 원상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었는데 ‘우리교회’라는 공동체의식의 무너짐이 느껴지기 시작하니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대부분의 교회들이 전통적인 예배공동체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어떤 이들은 소금이 물에 녹지 않으면 어떻게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며 교회는 소금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저들의 논리를 따르면 소금으로서의 교회는 녹아서 사라지고 기독교인들은 세상으로 흩어져 빛이 되도록 비대면예배의 방향을 모색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 “저는 그동안 진정한 교회를 모른 채 목회현장을 지켰던 것은 아닌가 싶어 화가 납니다.” ‘보이는 교회’(visible church)의 뿌리가 흔들리더라도 ‘보이지 않는 교회’(invisible church)는 발전할 수 있느냐는 의문 때문에 심리학이 펼쳐 보이는 ‘요나증후군’(Jonah syndrome)에 함몰되어 자신을 향해 화를 내다못해 마침내는 자학하며 버둥대는 자신의 모습이 어처구니 없다는 고백이었다.

▨… 한비자였던가. 수주지류야(守株之類也)로 인간의 어리석음을 한껏 조롱했던 사람이…. 그 목사는 하나님의 교회가 무너져내릴 징후를 보이는데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어제의 토끼 때문에 나무의 그루터기만 붙들고 있는(수주대토) 송나라 농부의 어리석음과 무엇이 다르냐고 물었다. 그 자학이 뼈가 시리도록 아파서 노목사는 그 성결인 목사에게 함께 무릎을 꿇도록 제안하지도 못했다고 했다. 

▨… 예배는, 보이는 교회의 생명이다. 또한 기독교 신앙의 생명이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음을 부정할 만큼 우리 성결교회는 무모하지 않다. 몰상식하지도 않다. 아무리 코로나19의 팬데믹 현상이 위중하더라도 우리의 위정자들이 법의 규제보다 대화로 방역에의 참여를 권유할 수는 없었을까. 법 만능주의는 비민주국가의 전가의 보도임을 결코 모르지 않으리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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