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한 불자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한 시각장애자 여인이 한 손에는 돈바구니를 들고, 다른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더듬거리며 차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여인은 구걸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듯, 출입문 쪽 기둥을 꼭 붙잡은 채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녀에게 돈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 모두가 못 본 척 시선을 외면했습니다. 흔히 있는 일입니다. 아마 저 자신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 “이때 휠체어를 탄 하반신 장애자가 그 칸으로 들어왔습니다. 출입문 쪽 기둥을 붙잡고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는 그 시각장애자 곁을 지나면서, 자기 무릎 위에 있던 돈통에서 동전을 집어서 그 여인의 바구니에 넣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모른 체하는데, 하반신 불구의 장애자가 자기가 구걸한 돈 통에서 동전을 집어서 그 시각장애자 여인의 바구니에 넣어 주고 지나가더랍니다.”(법정,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 법정은 누군가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 이야기를 인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저 자신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라는 그의 고백에서 많은 사람들은, 특히 그의 이름과 삶을 아는 종교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런지도 모른다. 법정의 ‘무소유의 삶’을 입술에도 담아 본 적이 없음을 차라리 다행으로 여기면서.

▨… 그러나 하반신 불구의 장애자가 구걸로 얻은 몇 푼을, 구걸이 아직 서툰 시각장애 여인에게 나누는 일이 벌어지는 곳이 우리의 삶의 자리라는 사실은, 우리 성결교회의 성결교회다움을 어떤 방향으로 추구해야 하는가를 질문하게 한다. 성결교회의 성결교회다움이 이제는 ‘박수치는 찬양’이나 ‘아멘!’으로 뒤덮이는 설교에만 국한될 수는 없는 것 아니겠는가.

▨… 본지 창간30주년을 기념하는 작은교회 목회수기 시상식에서였다. 수상자인 어느 하나님의 일꾼이 작은 목소리로 의견을 구했다. “수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교회 보다 더 작고, 더 어려운 교회들이 많으니 상금은 그 교회를 돕는데 나누면 어떨까요?” 직업인으로서의 목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목회자가 몸을 던지는 곳이 우리 성결교회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한마디였다. 우리 성결교회의 목회자는 교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헌신한다. 이 모습이 성결교회다움이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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