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를 보았다’, ‘아저씨’ 등 폭력 장면 담겨
공공의 적 설정해 복수 정당화 … 성숙된 시청 습관의 기회로 삼아야

 

추석을 맞아 극장을 찾은 A씨. 요즘 화제의 그 영화 ‘아저씨’를 벼르고 벼르다가 드디어 봤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유혈 낭자한 아저씨의 잔인한 복수극에 영화를 보는 내내 눈을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잔인하지만 재밌다는 주변의 반응을 들었기에 어느 정도 잔인성은 염두에 두었지만 생각을 뛰어넘는 장면에 언짢은 기분도 생겼다. 영화, 어디까지 잔인할 수 있는 건가?

영화, 폭력을 보았다

최근 영화계의 키워드는 잔인함이다. 스크린 속은 피로 철철 넘쳐나며, 주인공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폭력과 살인을 저지른다. 오장육부 파손, 사지 절단 등 신체 파괴는 기본이며, 어떻게 해야 더 잔인하게 묘사할 수 있을지 경쟁하는 듯하다. 올해 최고의 흥행작인 ‘아저씨’부터 한국 상업영화 최초로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악마를 보았다’, 작은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까지, 폭력성을 묘사한 영화의 개봉이 이어지자 잔인 코드가 하나의 장르가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영화들이 연이어 잔인함을 묘사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소재 고갈에서 오는 한계를 표현의 세기로 넘어서려는 의도라고 언급했다. 청어람 아카데미 박준용 프로그래머는 “한국영화는 더 이상 새로운 내용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이야기들이 나온 상태다. 이제는 새로운 이야기보다 표현 방법으로 경쟁하고 있다”며 “그런 점에서 폭력성과 잔인성은 다른 표현법보다 관객에게 전달하는 영향력이 강하기에 이와 같은 묘사가 영화 속에서 번번이 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관객들은 부조리가 가득한 현실의 답답함을 영화 속 폭력을 보며 대리 만족하고 희열감을 얻으므로, 흥행성에 관심 있는 영화들이 이러한 장면을 영화에 삽입했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적을 향한 폭력은 인정?

문제는 이러한 폭력이 잘못된 선택이 아닌 당연한 것이라는 듯한 극의 흐름이다. 영화 ‘아저씨’의 주인공은 장기매매를 저지르는 살인마들에게 붙잡혀 있는 이웃집 소녀를 구하기 위해 복수를 시작한다. 이 복수에는 총, 칼 등 흉악한 도구들이 등장하며, 주인공은 순식간에 수십명을 처참히 살해 한다.

그러나 관객들은 이러한 영화 속 장면에 짜릿함을 느낀다. 이유는 하나다. 주인공의 적은 절대적인 악인이기 때문이다. 세 영화 속 주인공들의 복수 상대는 지극히 악한 존재로 그려지고 있다. 자신의 가족을 죽인 희대의 살인마(악마를 보았다), 주인공에게 행해지는 성적, 육체적 폭력범과 살인자, 은폐자(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장기매매와 마약 판매범(아저씨) 등이 그들이다.

이들에 대한 주인공의 복수는 힘없는 자들의 발악이자 악인에 대한 처벌로 그려낸다. 이 영화들을 본 관객들은 주인공의 복수를 통해 통쾌함까지 느끼곤 한다. ‘악인에 대한 폭력이라면 정당화된다’는 생각을 관객에게 은연 중 심어주는 것이다.

기독교계의 시선은?

이러한 잔인성과 폭력성을 포함한 영화들의 잇따른 개봉에 대해 교계는 어떠한 시선을 유지해야 할까.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이를 대비하는 눈을 기르는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고 언급했다.

박준용 프로그래머는 “이번 세 영화들은 장르와 내용이 모두 다르므로 의도성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 속 폭력묘사는 앞으로 나올 영화 속에서 계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개봉되는 영화들을 주의 깊게 살피면서 앞으로 계속될 폭력성과 잔인성을 지닌 영화들을 비평할 수 있는 눈을 기르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속 잔인성이라는 트렌드를 막기는 어렵겠지만 기독교의 정신으로 영화를 비평하며 올바른 시청 습관을 가지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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