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이 잘 아는 대로 인생의 결정적 틀이 형성되어지는 것은 1차는 3세, 2차는 7세다. 인간의 뇌의 발달도 그렇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그것이다. 예수 믿는 것도 그렇다. 실험 집단 4200명을 정밀 조사해 보니, 주님을 영접한 나이가 14세 이전이 82%인데 15~19세는 14%밖에 되지 않았다. 19세부터 노년까지는 6%이다. 15세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예수 믿는 비율은 20%에 불과하다. 이러한 내용은 14살 이전의 전도와 신앙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좋은 예다.

그런데 요즈음 한국교회가 놓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선교의 장이 바로 이들 세대의 선교와 교육이다. 대부분 교회가 여러 이유로 청·장년 중심의 목회에 치중하고 있다. 다음세대를 말하면서도 실은 장년사역의 목회에 치중하고 있는 것이다. 장년사역의 한 부분 사역으로 어린이, 청소년 사역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장년 사역에 비해 청소년, 어린이 사역에 투자되는 물적, 인적, 구조적, 시설적 자원들이 턱없이 부족하다.

GE의 전설적 CEO였던 잭 웰츠는 성공적인 기업을 운영하려면 10분후, 10년후, 100년 후를 같은 무게로 느끼고 직시하며 함께 더불어 치열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하였다. 사실 서구교회의 침체와 몰락을 크게 두 가지 요인에 의한다. 하나는 다가오는 세대에 대한 준비 부족과 그 세대를 이끌 다음세대를 구비하지 못한 데 있었다. 그리고 다음세대가 아닌 다른 세대를 키운데 있다. 한마디로 근시안적 안목과 짧은 호흡으로 인해 큰 대가를 지불하고 있음을 교훈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그것을 깊은 성찰로 곱씹지 않는 한 반복되어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한국교회가 무너져 내려 앉고 있는 다음세대에 긴박감을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얼마 전 CCC가 한국 갤럽 조사연구소에 의뢰하여 조사한 대학생들의 복음화율은 3.7%, 청소년들의 복음화율도 4.0%에 불과했다. 우리 교회의 미래 기반이 매우 부실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음세대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과감한 투자와 노력으로 다음 세대를 키우는 것이 미래를 담보하는 것이 될 것이다.

80년대 초 가톨릭, 불교는 80년 이후 그들의 미래가 지역사회와 다음세대에 있음을 다양한 분석을 통해 찾아내고 그 이 후 상당한 물적, 인적, 조직적, 시설적 지원들을 구조적으로 체계적으로 이 분야에 쏟아냈다. 그리고 4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새로운 르네상스를 경험하고 있다. 반면에 그렇지 못한 우리들은 정체를 넘어 침체를 걱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파종’이 아닌 ‘추수’에 대한 깊은 성찰과 통찰이 간과된 피상적인 현상 접근만 하고 있다.

이런 정황과 함께 하나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이슬람의 선교적 전략이다. 2008년부터 본격화된 이슬람의 선교는 한국을 동북아시아의 선교의 교두보로 삼아 총체적 선교를 시작했다. 이들의 선교 전략의 특징은 처음부터 사원을 짓고 직접 선교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 안목을 갖고 최소한 20~30년 후를 내다보며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공략해야 할 핵심지역과 핵심인재를 단계적으로, 체계적으로 세워 간다는 것이다. 20~30년 후에 사회의 핵심 지도자가 될 차세대 또는 다음세대 중 핵심인재를 찾아내 그들을 키우므로 그들로 하여금 20~30년 후에 이 세상을 이슬람의 세계로 만든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다양한 측면에서 그 일들이 생각보다 강도 높게 진행되고 있다.

‘토끼나 사슴을 쫓다 산을 보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 우리가 보아야 할 산 중의 하나는 ‘다음세대’다. 장년사역이 한 날개라면 차세대, 다음세대 사역은 그와 같은 비중으로 씨름되어져야 할 또 하나의 날개다. 날기 위해 한 날갯짓만 하면 날지 못하고 깃털만 빠진 채 열심히 몸부림치는데도 그 자리일 뿐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서 있는 자리가 그렇다.

21C의 새로운 선교전략인 ‘4/14창’(4살~14살까지를 21C의 선교의 핵심 창으로 삼아 21C를 준비해야 한다는 선교전략)이 아니더라도 20~30년 후 한국교회의 미래를 직시한다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역량의 상당부분을 쏟아내야 할 것은 다음세대, 차세대의 선교다. 그들을 미래의 지도자로 구비하기 위한 치열한 목마름과 몸부림이 필요하다. 지금은 우리가 직시해야 할 산을 보고 치열하게 미래를 준비하고 씨름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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