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된 웅변으로 승부하라

설교는 구체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 외에 크게 설교의 내용, 설교의 형식 그리고 설교의 전달이라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세가지 요소 가운데 설교의 내용을 유독 강조해 왔다. 이런 배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로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형식이나 전달 등 소위 인위적인 요소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의 설교기준은 초대교회 특히 카타콤에서의 설교가 수사적 치장을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그 당시 교인이 된다는 것은 곧 순교를 의미하는 것이고 그렇게 목숨 걸고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전달의 장치도 필요치 않을 것이다.

기독교의 대중화는 필연적으로 카타콤 신앙의 연성을 불러올 수밖에 없었고 그런 변화된 환경은 거기에 맞는 대처를 필요로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 인간이 되시는 눈높이 조정을 하신 것처럼 설교 역시 회중에게 완벽한 하나님이 되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따라서 회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설교는 회중이라는 구체적인 대상을 가진 연설임을 염두에 두면 변화된 상황 속에서 회중에게 들려지는 설교를 위해 무엇이 효율적인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 한번 냉정히 따져보자! 깊이 있는 내용인데 회중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설교와 깊이는 별로인데 회중에게 잘 전달되는 설교중 진정 바람직한 것은 어떤 설교인가? 

어거스틴이 한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진리를 말하는 설교자가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해 진리를 거짓처럼 들리게 하는데 반해 거짓을 말하는 사기꾼이 수사술을 배워 거짓을 진리처럼 들리게 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자가 말하는 기법인 수사술을 멀리해야 하겠는가?

설교는 ‘말’이다! 말하는 법을 다루는 학문은 수사학이다.  설교자는 전달을 위한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다. 설교가 웅변은 아니지만 웅변을 통해 적지않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음도 사실이다. 또 어렵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집에서 수사훈련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설교의 전달을 위한 훈련은 천성적 소질보다는 후천적인 훈련으로 충분히 습득할 수 있다. 설교자는 ‘맛깔나는 설교’를 위해 자기만의 독특성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언어훈련(음성, 발음, 고저장단, 억양), 수사기법훈련(휘몰이법, 점층법, 절정의 처리, 휴지(pause)기법, 감정이입, 센스어필(sense appeal)), 비언어적 요소 훈련(시선, 제스처, 표정)은 당신의 전달 능력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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