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개신교에는 교파가 많은가?

홍성철 박사
교회는 근본적으로 조직체가 아니라 유기체이다. 유기체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신앙공동체를 말한다. 그들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서 자유롭게 예배와 교제를 나눈다.

이처럼 유기체적인 특징을 강조하는 교회를 자유교회라고도 한다. 그들은 어떤 상위계급의 사람이나 기관으로부터 지시나 명령을 받지 않는다.

그들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또 그들을 구체적으로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그들이 강조하는 점은 바울 사도의 말대로 자유이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이런 자유교회의 특징은 구성원들의 신앙고백이 같다는 것이다. 신앙고백의 내용에는 많은 것들이 있지만, 적어도 세 가지는 같아야 한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구원받는다는 고백이다.

둘째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셋째는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성령으로 한 몸을 이룬 지체요, 형제자매라는 고백이다.

그런데 자유교회도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특징과 강조점이 달라진다. 민주화의 세찬 바람이 불어오던 영국 사회에서 태어난 교회는 자연스럽게 교회의 민주화를 강조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졌다.

그들에게 최종적인 권세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지, 결코 왕이나 대주교가 아니었다. 그들이 세운 교회가 최후의 결정권을 갖는 자치적인 공동체였다. 그렇게 태어난 교회가 침례교회였다.

존 웨슬리의 시대에는 영국국교회가 지배하고 있었다. 목사인 웨슬리는 영적으로 방황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났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말씀을 토대로 사람들이 거듭나야 할 것을 강조했다. 그뿐만 아니라 평신도는 설교도 못 하고 지도자가 될 수 없는 폐단을 과감히 극복하였다.

그는 평신도를 훈련해서 모임 인도는 물론 설교도 시켰다. 그렇게 태어난 교회가 감리교회였다. 침례교회나 감리교회는 자유교회이자 동시에 고백적인 교회였다. 그러나 이 두 교회의 배경과 강조점은 서로 달랐다. 그런 분명한 이유로 두 개의 다른 교파가 생겨난 것이다.

성령의 역사로 태어난 한국교회를 보자. 선교사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많은 사람이 소망을 찾을 수 없어서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술과 담배에 찌들어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소망이 주어졌다. 그 소망 때문에 기꺼이 술과 담배를 포기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한국교회는 술과 담배를 엄히 금하는 청교도적인 형태를 취했다.

이제 개신교에는 왜 그렇게 많은 교파가 있는지 이해가 된다. 그 교회들이 태어난 시대와 배경 때문이고, 또 성령의 역사로 그들이 받은 각기 다른 은혜와 경험 때문이다.

지금도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새로운 교회가 탄생하고 있다. 그들은 자유교회이며, 고백적인 교회이다. 또 많은 사람이 교회를 선택할 때, 각 교회의 강조점을 비교하여 각자가 편하게 느껴지는 교회를 선택할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 있다.

반면, 천주교회는 어떤가? 이 교회는 유기체를 강조하기보다는 조직체를 강조한다. 그 조직체를 든든하게 만들려고 많은 상하의 계급제도를 만들었다. 맨 꼭대기에 교황을 세운 후 그 밑에는 추기경, 다시 그 밑에는 대주교, 또 그 밑에는 주교, 그리고 몬시뇰과 신부가 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그 시대에 맞게 역사하시는 성령님! 그리고 장소와 사람에 따라 그 사람에게 가장 적합하게 역사하시는 성령님! 그렇게 태어난 수많은 자유교회! 수많은 고백적 교회! 얼마나 놀라운 은혜이며, 얼마나 놀라운 역사인가! 그 결과 여기저기에 생겨난 수많은 교파! 그들은 이천년이나 된 큰 나무에 붙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가지들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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