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토트, 우리 곁에 살다 간 거인

손동식 목사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20세기 가장 위대한 설교자로 평가받는 존 스토트는 1921년 4월 27일, 영국 의학의 중심지였던 런던 할리(Harlery)가에서 태어났다.

스토트가 신앙의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청소년 시절, 럭비 스쿨(Rugby School)에 재학할 때였다. 그가 17세 되던 해, 에릭 내쉬(E. Nash) 목사의 설교를 통하여 스토트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였다.

이후 스토트는 캠브리지의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와 리들 홀(Ridley Hall)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영국 국교회의 목사가 되었다. 그리고 1945년, 자신이 어린 시절 출석했던 올 소울즈 교회의 해롤드 언쇼 스미쓰(H. Earnshaw-Smith) 밑에서 목회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언쇼 스미스 목사의 건강 악화로 1950년 29세의 젊은 나이에 올 소울즈교회의 새 담임목사가 되었다. 이후 스토트는 손님초청예배(guest services)와 평신도 훈련학교를 비롯한 목회사역을 시작하였으며 평생을 올 소울즈 한 교회에서 사역하였다.

비록 스토트의 사역이 전방위적으로 다양한 것이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공헌은 영국과 세계 복음주의의 부흥을 위한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영국교회 내에서 복음주의는 무시당하는 소수로 존재했었다.

그러나 1950년대 이후 복음주의는 크게 성장하였는 데, 알래스터 맥그라스(A. E. McGrath)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로 존 스토트의 사역을 꼽는다. 맥그라스는 말한다.

“설교와 저술 사역을 통하여 떠오르는 세대의 복음주의 학생들에게 끼친 존 스토트의 영향력은 쉽게 측정될 수는 없다. 만일 영국 복음주의의 괄목할만한 성장의 공이 그 어떤 사람에게 돌려져야 한다면 그것은 스토트에게 돌려져야 한다.”

특히 스토트의 강해설교는 영국과 미국의 대학은 물론이요, 지성인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스토트가 일반적인 강사와 달리 계시의 말씀인 성경을 논리적이며, 선명한 방식으로 드러내는 강해설교자였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또한 스토트는 기존의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과 달리 성경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면서도 현대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의 성경적 해결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다. 이러한 그의 균형잡힌 관심은 1974년 개최된 로잔대회(Lausanne Congress)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스토트는 이 대회에서 로잔언약 입안위원회 의장으로 신학적, 교회적 지뢰밭 사이에서 중도를 지키며 복음주의 역사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 로잔언약서를 입안해 내었다.

필자가 믿기에 당분간 세계 복음주의교회가 그 깊이와 넓이에 있어서 이런 균형잡힌 지도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을 듯 하다. 특히 복음주의 교회를 표방하는 혼란 가운데 있는 한국교회는 그의 삶과 가르침에 더욱 겸손히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신학생과 목회자에게 존 스토트의 모든 책을 필독서로 추천하고 싶다. 스토트는 우리 시대 가장 가까이 살았던 목회자요, 신학자요, 설교자로 교회의 신앙과 복음, 목회와 설교에 관한 균형잡힌 ‘표준’을 제시해 준다.

스토트는 교회가 처한 시대의 도전을 간과하지 않으면서도 시대의 현란한 유행과 거짓신들을 따라가기 쉬운 교회의 유혹을 경계한다. 또한 복음을 위한 효과적인 전략과 동시에 복음을 위하여 지불해야 하는 고독한 싸움에 관해서도 주저하지 않는다. 깊이와 넓이, 실력과 진정성, 용기와 겸손함을 갖춘 그런 ‘사도’를 우리 시대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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