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 앓으며 오솔길교회 개척한 김범기 목사

김범기 목사(오솔길교회)는 2015년 43살의 나이에 파킨슨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세 아이의 아빠이자 목사로 할 일이 많은 나이였다. 게다가 새 사역을 펼쳐 보겠다고 교회를 옮기는 시점이었다. 목회사역도 접어야 했다. 너무 억울하고 원망스러웠다. 자신보다 더 힘들어 할 아내와 아픈 아빠를 두고 살아가야 할 세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한 것이 참을 수가 없었다. 

몸이 뻣뻣하게 굳는 파킨슨병은 약을 잘 복용하면 생명은 연장시킬 수 있지만, 아직 완치방법이 없다. 그 병에 걸렸다는 것만으로 큰 실의에 빠질 수밖에 없는 희귀 질환이다. 그 역시 1년 동안은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차에서 내리는 간단한 동작조차 힘겨워 20분 넘게 걸린 적도 있었다. ‘절망이란 게 이런 거구나’를 실감했다. 가장이기에 더욱 괴로웠다.

▲ 생명 태우며 목회하는 김범기 목사
그때 문득 ‘아직 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 왜 이러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느리지만 삶에 충실하게 살았다. 잘 먹고 잘 쉬고 약 먹으면 멀쩡해 보이다가도 약을 거르고 신경 쓰고 무리하면 금방 환자 티가 났다. 온전하지 못해도 하루를 살았고, 다음 날도 또 그렇게 살았다.

그 때부터 그는 ‘이 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병이 들긴 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완벽한 때는 결코 오지 않는다는 것을 체득한 그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을 시작했다. 불치병에 걸린 목회자를 교역자로 받아줄 교회는 한 곳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학교의 배려로 아픈 몸을 이끌고 일할 수 있었다. 

어려워도 하고 싶은 일을 하다
그는 꼭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바로 그동안 준비해온 가족과 함께 유럽을 여행하는 것이었다. 더 병이 깊어지기 전에 세 아이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다. 계속 걸어야 하는 유럽여행의 특성상 건강이 필수였지만 도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어렵지만 여행을 감행했다. 아픈 아빠와 19개월 된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다섯 식구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10일 동안 꿈에도 잊지 못할 유럽여행을 했다. 그것도 500만 원에 말이다. 주변 사람들의 도움도 컸지만 무언가 새로운 것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을 좋아하는 김 목사가 인터넷 서핑과 발품을 판 결과였다. 8년간 항공 마일리지를 모은 지독한 성실함이 마침내 건강한 가장도 쉽게 이루지 못할 일을 해 낸 것이다.

유럽 여행이 자신감을 키워 준 것일까? 그는 성한 사람도 어렵다는 ‘교회 개척’을 결심했다.


▲ 오솔길교회
어차피 불치병 목사를 청빙할 교회는 없을 테니까 차라리 교회를 개척하기로 한 것이다. 아내도 금방 동의했다. 하지만 개척자금은 고사하고 하루하루 아이들을 키우며 사는 것도 버거운 경제 상황이었다. 모든 것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는 “교회인 듯 교회 아닌 교회 같은 교회, 그래서 하나님 모르는 사람들도 편하게 올 수 있는 교회, 커피 한 잔 편하게 나누며 싫은 사람 욕할 때 같이 욕해주며 위로하고 힘을 충전할 수 있는 그런 교회가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개척은 시작되었다. 3월부터 먼저 가족끼리 예배를 드리기 시작했다.

“큰 딸이 반주하고 둘째 딸이 헌금위원하고, 가끔 소리도 지르고 우는 막내 딸도 있으니 교회로서 갖춰야 할 면모는 다 갖춘 것 같습니다. 하하.”

개척 목회에 대한 확신은, 김범기 목사에게 부담이 아닌 희망으로 다가왔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사람들로부터 이어지는 도움의 손길을 부족함 없이 채워주셨다. 아는 사람의 지인은 김 목사의 사연을 듣고 3개월 째 십일조를 오솔길교회에 하고 있다. 한 번은 교회 차량 구입을 두고 기도하며 ‘500만 원만 더 채워지면 교회 차로 스타렉스를 구입 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하루 만에 500만 원이 채워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전에 사역하던 서대전교회에서 300만 원을 지원해주겠다는 연락도 오고, 같은 날 점심시간에는 같은 학교에서 근무하는 한 권사가 200만  원을 건네주었다. 개척 목회 결정을 응원하시는 하나님의 따뜻한 사랑을 의심할 수 없게 만든 사건이었다.

“저는 지금도 오솔길교회를 ‘제가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뒤를 든든하게 밀어주신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김범기 목사는 인생길을 천천히 걸어가자는 뜻을 담아 교회 이름을 ‘오솔길’로 정했다. 천천히 걸으며 주변의 이웃도 돌아보고, 서로 도우며 살아가자는 의미이다. 교회 이름에 걸맞는 나눔 사역들도 벌써 진행 중이다.

내가 힘든 만큼 이웃들 돌아보고 섬겨야
‘오솔길 이야기’라는 지역 신문을 일 년에 두 번씩 발행한다. 신문에는 ‘숲길지기의 글로 쓰는 노래’, ‘영화설교안내’, ‘우리 동네 맛집 멋집 이야기’, ‘우리 동네 마을버스 운행안내’ 등이 실려 있는데,  한 번 보고는 교회 소식지인지, 지역 소식지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주변 상가들과 협의해 제작한 쿠폰북도 실려 있다. 교회 소식 뿐 아니라 지역 상권에도 도움이 되는 교회가 되고 싶다는 김 목사의 뜻이다.
또 자신이 자녀들을 키울 때 기저귀 살 돈이 넉넉하지 않아 힘들었던 때를 돌아보며, 기저귀 나눔도 하고 있다. 형편이 어려운 한 가정을 선정해 한 달에 기저귀 두 팩 씩 일 년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해당 가정은 김 목사의 섬김에 감동받고 오솔길교회에 나오기로 약속했다.

장학금 사역도 이미 시작했다. 지역 저소득층 아동이 대상이다. 매달 일정 금액을 저축하면 국가에서 동일한 금액을 적립해 주는 ‘디딤씨앗통장’을 활용해 월 3만 원씩을 저축해 후원하는 것이다. 김범기 목사 가정도 어렵지만 다른 어려운 아동을 모른척할 수는 없었다. 야구가 꿈인 아이의 야구용품도 후원하고 있다. 넉넉해서가 아니라 나누면 희망이 커지니까 나눔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 김범기 목사 가족

“이 순간 주신 것 감사”
약을 먹지 않으면 곧바로 병색이 완연해질 정도인 파킨슨 병 환자인 김 목사가 이렇게 목회 열정을 불태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목사는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제가 비록 병 때문에 목회에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주변 사람들이 저를 보며 ‘저 사람은 저렇게 아픈데도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네?’라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목회를 하겠다’는 김 목사는 “하고 싶은 게 아직도 많은 것이 참 감사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 일을 이루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삶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부활을 꿈꾸는 김범기 목사는 오늘도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느리지만 우직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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