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의 잘못은 좀처럼 자신에게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꼬집은 셰익스피어는 그의 희곡 줄리어스 시저에서 이런 대사도 남겼다. “당신은 자신의 숨은 가치를 눈에 비춰 줄 그런 거울이 없어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없소. 당신은 거울이 없으면 당신 자신을 볼 수 없으니까, 그러므로 내가 당신의 거울이 되어서 당신이 모르는 당신 자신의 모습을 보여드리지요.”

▨… 병신년(丙申年)이라고 여느 해와 다를까. 세모에 선 사람들은 글깨나 읽었든 말았든, 이름깨나 얻었든 못 얻었든, 돈깨나 있든 없든, 쏜살같이 자신을 스친 세월의 잔영마저 놓친 낭패감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세모에 선 사람들은 한결같이 허무의 심연에서 허우적댄다. 자신이 팽개쳐버린 자신의 참모습을 찾아야겠다는 엄두조차 내지 못하면서….

▨… 셰익스피어는 시간을 일러 야박스러운 주막주인과 같다고도 했다. 주막주인은 주막을 떠나는 손님에게는 가볍게 아주 가볍게 작별의 인사를 한다. 그러나 들어오는 손님에게는 호들갑을 떨며 달려가 악수를 한다. 반길 때는 웃는 모습을 하고 헤어질 때는 한숨을 쉰다. 이런 시간(세월)의 생리를 바르게 이해했더라면 우리는 세모에 서서 덧없는 세월 때문에 한숨짓는 일만은 피할 수도 있었으리라.

▨… 뉘라서 한해를 뒤돌아보며 뜨악하지 않을 수 있을까. 누군가 때문에 “내가 이러려고 뭐뭐했나”라는 말이 유행어가 되었지만, 자신의 한해의 삶을 뒤돌아보며 ‘내가 이러려고’라는 회한을 곱씹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츤데레’가 소년 소녀의 감춰진 얼굴을 드러낸다면 셰익스피어의 거울은 나만 모르고 있는 내 얼굴을 드러내주는 반사경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을 확인할 용기는 또 다른 문제겠지만.

▨…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은 둔갑의 명수다. 새나 물고기로 변하고 여럿의 가짜 손오공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조요경 앞에선 손오공의 둔갑술은 무용지물이다. 정체가 드러나 버리는 것이다. 지난 1년, 손오공 못잖은 둔갑술을 보여준 자신을 조요경에 비춰 부끄럽더라도 참모습을 드러내려하는 지도층이 있다면 우리사회의 새해는 조금은 희망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세모에 서서 곱씹어야 하는 회한마저도 외면해버릴 만큼 우리는 뻔뻔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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