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스토옙스키는 ‘지하생활자의 수기’라는 단편소설에서 독특한 성격의 한 인간을 그려냈다. 그가 그린 주인공은 ‘2x2=4’라는 사실에 기분이 나빠지는 사람이다. ‘2x2=4’라는 사실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어서 무력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이를 절대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한다. 이 어처구니 없는 분노의 사람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에만 있는 것일까.

▨… 20년 가까운 세월을 ‘지공거사’로 살아온 사람의 토로 한마디. “노약자석을 차라리 없앴으면 합니다.” 그에 의하면, 그 노약자석에  앉을 때마다 사회에서의 자신의 효용가치가 이미 또는 거의 끝나버린 것은 아닌가하는 질문을 매번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젊은이들 틈새의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자신이 너무 몰염치하다는 생각도 들어 괜히 조금씩 화가 난다는 토로였다.

▨… 은퇴하고서도 10년 가까운 세월을 목회했던 교회에서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어느 노(老)목사의 토로 한마디. “가능하다면 다른 지방으로 이사하고 싶어요.” 그에 의하면, 은퇴한 교회에 남는다는 것이 목회 현장에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조심스럽다고 한다. 목사다움이 평신도들의 눈과 귀와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 없기에 목사의 나이듦에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화가 난다는 것이다.

▨… 지공거사의 토로나 어느 노목사의 호소에는 어쩌면 하이데거(M. Heidegger)의 지적처럼 ‘죽음이라는 목표점’을 향해 달려가는 노인의 좌절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젊음이라면 분노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노년이 되면 체념으로 나타나는 것에서 나이는 그 본모습을 드러내는 것 아니겠는가. 지난 10월 2일은 ‘노인의 날’, 오늘의 세상에서 노인으로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은 노인의 날이라고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노인들은 점점 힘들어진다.

▨… 강직하기로 이름난 정인홍이 폐모를 청하는 상소를 올려 90세의 나이에 처형되는 것을 보고 완평 이원익이 말했다. “나는 심성이 바뀌어 잘 죽지 못할 것을 항상 염려하고 두려워하여 조심하기를 마지 않습니다.”(국조인물지) 이원익에 의하면 노인은 모름지기 잘 죽을 수 있도록 남은 날들을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조심하며 산다는 것이 지신(持身)을 말할진대 그것은 자신의 삶을 체념하며 살아온 세월만큼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며 반추하는 것이리라. 그래서 어느 노목사의 호소는 진솔한 것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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