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 역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잔혹한 대학살로 잉카문명이 사라졌다.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는 당시의 상황을 재구성해서(총,균,쇠) 보여준다. 1532년 11월 16일 스페인의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기병 62명, 보병 106명을 이끌고 잉카제국으로 진격했다. 카하마르카에서 마주친 잉카의 황제 아타우알파는 8만 명이 넘는 대군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러나 잉카의 대군은 무기라고는 나무 몽둥이 뿐이었다.

▨… 무엇보다 잉카인에게는 전쟁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총을 쏘는 보병과 말을 타고 칼과 창을 휘두르는 스페인군의 기습에 잉카의 병사들은 허수아비처럼 쓰러졌다. 단 한 번의 기습에서 잉카의 병사 7000명이 목숨을 잃고 더 많은 잉카인들이 부상을 당했으며 황제 아타우알파는 생포 당했다. 신세계(남미)에서 가장 크고 발전된 국가였던 잉카는 스페인 군 168명에 의해 하루 만에 무너졌다.

▨… 피사로는 포로된 아타우알파에게 말했다. “그대가 패하여 포로가 된 것을 모욕으로 생각하지 마시오.( …)우리가 온 것은 하나님과 성스러운 가톨릭 신앙을 만민에게 알리기 위함이었소.(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자만심을 꺾고 그 어떤 잉카인도 기독교인을 거스르지 못하도록 이 일을 허락하셨소.” 피사로는 기드온을 뛰어넘는 신앙의 사람이었을까, 그 잔혹한 살상을 하나님이 허락하셨다고 뻔뻔스레 주장했다.

▨… 사도 바울이 시발점인 선교역사에서 오늘의 교회는 감추어져 있는 하나님의 복음 전파에의 의지를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지를 아프게 물어야 한다. 16세기의 선교운동이 유럽 제국주의자들의 상업적 이해 및 국가의 식민야욕과 다소 애매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누구라 부정할 수 있으랴. 그럼에도 그 유럽의 선교역사 속에서 복음전파라는 하나님의 의지가 감춰져 있음을 우리는 믿음으로 고백한다.

▨… 미국 개척 초기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복음을 전하던 선교사들은 식민지 개척자들과 항상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식민지 개척자들은 원주민을 멸절하거나 쫓아내려 했고 선교사들은 공존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복음화는 원주민을 서구문화의 일원으로 길들이는 것이 아니다. 본래의 사람다움을 회복하려는 그리스도의 안간힘(복음)이 선교에서 배제된다면 교회는 과거처럼 새 제국주의의 하수인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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