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길가메시여, 당신은 어디로 배회하시오? 당신이 추구하는 영생은 찾지 못할 것이오. 신들이 인간을 창조하였을 때 그들은 인간에게 죽음을 정해놓은 거요. (그러나) 생명은 그들이 간직한 것이오.”(길가메시 서사시, 바빌로니아 역본 제10서판 제3단) 인류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알려진 길가메시 서사시(신화)의 길가메시는 영원한 생명을 위해 우주의 끝을 향해 길을 떠났다. 그러나 그는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와야 했다.

▨… 그 여행에서 길가메시는 죽음의 강 뱃사공 우르샤나비의 배를 움직이는 신비한 돌 형상을 깨뜨려버리기도 했지만 영생을 얻을 수는 없었다. 다만 한 가지 깨달음은 얻었다. 신들은 인간을 창조할 때 죽음을 인간의 숙명으로 정했으며 인간은 그 숙명 안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위대한 신들 아누나키는 함께 모이고 운명의 결정자 마메툼은 그들과 함께 운명을 정하노라. 죽음과 생명을 그들은 정하노라.”(제10서판 제6단)

▨… 지금으로부터 거의 5000년 전에 쓰여진 길가메시 신화에서, 인간의 한계라는 깨달음 앞에 무릎을 꿇었던 전도서 기록자의 향기가 우원하지만 느껴진다. 너무 비약하는 발상일까. 영원을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중국의 진시황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것은 어쩌면 에덴동산의 금단의 열매인지도 모른다. 이 또한 지나친 비약일까.

▨… 지난 주간 어느 일간지에 보기에 따라서는 끔찍한 사진이 게재되었다. 투명화를 거친 생쥐의 머리를 위에서 찍은 사진이었는데 신경세포들의 연결망이 무슨 도로의 모습처럼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생물의 투명화 연구의 최종 목표는 인간의 몸을 투명하게 만들어서 어떤 질병이 몸의 어느 구석에 자리 잡고 있는가를 밝혀내는 것이라고 한다.

▨… ‘길가메시의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한 생명을 곁눈질하는 ‘길가메시 프로젝트’는 현대과학이라는 이름 안에 시퍼렇게 살아 있다. 현대의학과 생명공학은 질병과 노화의 원인이 되는 생리적, 호르몬적, 유전적 시스템을 연구하며 언젠가는 ‘죽음의 신’을 무찌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길가메시 프로젝트에 참여한 몇몇 과학자는 그 시기를 2050년경으로 잡는다. 육신의 인간이 영원을 산다면, 그것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스스로를 신으로 만들면서 아무에게도 책임을 느끼지 않는 인간에게(유발 하라리) 우리는 어떤 대책을 세워 무슨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 답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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