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3년 10월 유대교 대속죄일에 이집트와 시리아 연합군이 이스라엘을 침공했다. 회당에서 기도와 금식에 열중하던 이스라엘은 불의의 기습을 당했다. 그 며칠 후 한 젊은이가 랍비를 찾았다. “하나님은 대속죄일에 이스라엘 청년들을 죽도록 내버려두시는데 나는 시편을 읽으며 그분을 찬양해야 합니까? 그 날 하나님을 향한 분노로 회당을 뛰쳐나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한 짓이 당혹스럽습니다.”

▨… 랍비가 말했다. “당신은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사과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기도서를 덮고 뛰쳐나온 행동이야말로 그날 드린 것 중 가장 신실한 기도일 것입니다. 그분은 그날 전쟁에서 희생된 사람들 때문에 당신과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마음이 불편하실 것입니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분 역시 선하고 깨끗하며 정직한 분노가 우물거리는 기도보다 훨씬 더 가치있다고 생각해 주십니다.”(해롤드 쿠시너, ‘현대인에게도 하나님이 필요한가?’)

▨… 랍비 쿠시너는 신실한 기도와 정직한 분노를 하나로 엮었다. 그의 그같은 엮음이 한국교회 현실에 맞을 수 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남지만 기도에 대한 그의 이해의 기반은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 앞에서의 정직이 우선임을 깨우쳐 준다. 예수께서도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비교하시며 기도는 자신에 대한 정직에서 시작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셨다.(눅18장)

▨… 우리가 몸담은 성결교회는 진리를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던 사람들이 일구어낸 하나님 나라의 상징이다. 일제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광복과 함께 부활의 생명을 허락받은 교회이다. 우리는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다음세대에게 전수해야 한다. 이 명령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신실하게 기도하고 있는지, 정직하게 분노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 10월에 사중복음 목회자콘퍼런스가 열릴 예정이라고 한다. 선조들이 지켜낸 신앙의 유산을 잃어버리지 말자는 다짐이리라. 그러나 교단사에서 비슷한 유형의 모임이 총회장 업적 쌓기라는 오해를(?) 감수하면서도 추구되어왔음을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지금까지와는 의도 자체가 다른 목회자콘퍼런스이기를  바라는 마음들 속에 행여나 ‘정직한 분노’가 숨어있지는 않은지 살펴주기를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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