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문학 교수인 존 호헨버그(John Hohenberg)는 신문과 공익성의 관계를 논하면서 ‘신문의 책임’을 밝힌 적이 있다. 그에 의하면 진실한 신문은 첫째로 뉴스를 용기있게, 공정하게 보도할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 공익에 봉사하고 사회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로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 신문발행의 자주성과 독립성을 지킬 수 있어야 한다.(존 호헨버그, ‘신문학’)

▨… 호헨버그가 말하는 신문의 책임론을 금과옥조로 삼도록 신문을 향해 강요하는 사람들에 대해 월터 리프먼(Walter Lippman)은 신문의 한계를 친절하게 지적해 주었다. “신문이 다루는 것은 바로 사회에서 통치하는 힘들이다. 신문이 그런 힘들을 자체적으로 기록할 수 있다는 이론은 잘못된 것이다. 신문은 제도들이 신문을 위해서 기록해 놓은 것만을 기록할 수 있을 뿐이다.”(월터 리프먼, ‘여론’)

▨… 자본의 언론 장악을 신랄하게 비판해온 노엄 촘스키(Avram Noam Chomsky)는 현장에서 뛰고 있는 언론인들을 향해서도 가차 없이 단검을 꽂았었다. “기자들은 기자 일은 정직하게 하고 있지만 실은 권력에 종속되어 있다는 얘기를 아주 증오하지요. 차라리 이런 얘기를 듣고 싶어 합니다. 권력의 치부를 폭로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정직하지 못할 때도 있다.”(노엄 촘스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 한국성결신문이 창간 26주년을 맞았다. 26년 전, 남전도회 회보 시절을 회고하면 한국성결신문은 장족의 발전을 이뤄냈다. 신문을 발간해낼 수 있는 자본이나 인적 자원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못한 상황에서였지만, 교단의 발전을 위해서는 신문 발행이 필요하다는 자각과 열정이 교단의 평신도 지도자들을 하나 되게 하여 결단의 자리에 서게 했던 것이다. 당시로서는 무모하다고 지탄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 창간 26주년을 맞아 한국성결신문은 호헨버그의 신문의 책임론을 다시 반추하려 한다. 리프먼이 지적하는 언론의 한계에도 힘을 다해 맞서려 한다. 촘스키의 비아냥에는 자신의 부끄러움을  돌아보며 다시 언론의 사명을 다짐하고자 한다. 한국성결신문을 사랑하는 성결인들의 마음을 다한 성원이 있기에 신문 발행의 여건이 아무리 열악하더라도 한국성결신문은 지금까지처럼 가야할 길을 갈 것이다. 이 길이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이끄시는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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