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전하는 장애인 예술가들

시각장애합주단 한빛예술단

선이 굵은 금관악기 소리가 강당을 가득 메운다. 열정적인 스페인 가곡이 힘 있는 연주에 실려 듣는 사람을 매료시킨다. 이런 풍부한 표현력을 지니려면, 연주자들은 여러 가지를 보고 느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놀랍게도 이 음악을 연주하는 이들은 앞을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인들로 구성된 한빛예술단이다. 

한빛예술단에서 트럼펫을 연주하는 김효선 씨는 태어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다. 비장애인들이야 악보를 보고 연주를 한다지만, 효선 씨 같은 시각장애인들은 연주를 하려면 악보를 통째로 외워야 한다고 했다.

“악보를 통째로 외워야하는 게 어렵죠. 게다가 보지 못해서 듣기만 하고 외우려니 더 힘든 것 같아요.”

게다가 합주단이라 모든 단원들이 연주의 모든 요소를 조화롭게 맞춰야 하는데, 모두가 시각장애인이다 보니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 비장애인 음악인들처럼 눈짓으로 소통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다.

예술단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고 있는 김하연 씨는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을 다 버리고 지휘자 선생님 말씀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곡 하나를 제대로 완성하려면 최소한 한 달 반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들은 왜 이렇게 어려운 길을 선택해서 걷는 것일까? 이유는 하나다. 김효선 씨는 “연습하며 어려운 과정을 지난 후에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게 되면 어려웠던 만큼 더 기쁜 것 같다”고 말했다. 음악이 좋아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간 중간 어려운 과정도 있었지만, 연주를 할 때가 가장 재미있고 행복하다는 게 공통된 반응이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개인적인 행복보다 더 큰 동기부여가 생겼다고 한다. 바로 듣는 사람들이 한빛예술단의 연주를 듣고 삶이 변화됐다고 고백할 때이다.

김하연 씨는 “저희가 순회공연 중에 대구 청송교도소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저희가 연주를 시작하니까 그 분들의 눈빛이 부드럽게 변했다고 들었다”며 “끝에 가서는 기립박수도 쳐주셨다는 말을 듣고 기뻤다”고 말했다.

수감자 중에 한 명은 직접 손 편지를 보내, 한빛예술단의 음악을 듣고 감사하지 못하고 살았던 지난 날을 반성하게 됐다고 고백했다고 한다.

들뜬 목소리로 가장 보람됐던 순간을 이야기하던 이들도 우리 사회의 ‘편견’은 아직 조금 불만이라고 했다. 교회 안에도 아직 편견이 있는 것 같다며 그냥 같은 사람으로 봐달라고 부탁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저희를 불쌍하게 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냥 어느 한 곳이 더 불편한 한 사람으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전신마비 미술가 탁용준 작가

유성물감 냄새로 가득한 탁용준 작가의 작업실에 들어서니 탁 작가가 소매에 고정해놓은 붓으로 유화를 그리고 있었다. 30년 전 수영장에서 다이빙을 하다 불의의 사고로 목뼈가 부러져 그는 전신이 마비됐다. 노동력 상실을 선고받았던 그는 처음에는 손가락 하나 못 움직였지만 재활치료로 지금은 손목을 아주 조금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이 정도 움직이게 된 것도 성공적인 재활 사례로 꼽힌다.

물도 혼자 마시지 못하고 전화도 혼자 받지 못하는데도 그가 그린 작품은 밝고, 따스하며 동글동글 동화적인 포근함을 담고 있다.

탁 작가는 “처음에는 움직이지 못하는 허수아비를 많이 그릴 정도로 그림이 굉장히 어두웠는데 어느 순간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고 의도적으로 말을 많이 하고 많이 웃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처음 사고를 당했을 때는 원망도 많이 했지만 다친 후 어쩔 수 없이 그림을 그리게 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끼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또 “시간이 지나고 나니 제가 미술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장애가 있는데도 가정이 행복하게 유지가 되고, 기쁜 일들도 쌓이게 되고 감사하다. 안 다쳤으면 오히려 의미 없는 삶을 살았을 것 같다”고 고백했다.

긍정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게 처음에는 힘들 수 있지만 마음먹고 계속해서 노력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것이 자연스러워지고 편해지는 순간이 온다고 했다. 이런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그린 그림들이 유명해져 작년 10월에는 ‘행복과 희망을 그리는 화가’로 국민추천포상 대통령 표창까지 받았다. 

혹시 몸이 안 불편했으면 더 멋진 작품을 그릴 수 있지 않았을지, 아쉬움은 없냐고 물어봤다. 탁 작가는 “몸이 자유로웠으면 그림을 그리지 않고 돈을 벌었을 것 같다”며 “이렇게 그림을 통해 사랑과 평화를 담아내는 삶을 통해 신앙과 더 가까워진 것에 감사드린다”고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탁용준 작가는 이제 그림으로 다른 사람들을 돕고 있다. 그 동안 자선 개인전을 두 차례 열어 불우이웃을 돕고 소아암 환자들의 병원비도 지원했다. 앞으로도 매년 크리스마스 기부전을 통해 계속해서 이웃들을 도울 계획이라고 한다.

무엇하나 자유롭게 할 수 없는 신체조건임에도 불구하고 햇빛처럼 밝은 탁용준 작가의 미소에서 건강하고 강인한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듯 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