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피붙이 딸이 어미의 염려하는 마음을 뻔히 알면서도 한사코 어깃장을 놓을 때 이 땅의 엄마들은 머리끝까지 치솟는 화를 이 한마디로 달랬다. “더도덜도 말고 시집가서 꼭 너 같은 딸 하나만 낳아라.” 그러면서도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 딸 모르게 살짝 돌아서서 배시시 웃었다. 그 말이 자신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지금은 곁에 없는 어머니가 들려준 말임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 그런 여인들의 숙명을 시인 이성부는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라고 읊었다. “어머니 그리워지는 나이가 되면/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되어 있다./ 우리들이 항상 무엇을/ 없음에 절실할 때에야/ 그 참모습 알게 되듯이./ 어머니가 혼자만 아시던 슬픔,/  그 무게며 빛깔이며 마음까지/ 이제 비로소/ 선연히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넘쳐서 흐르는 것을./ 가장 좋은 기쁨도/ 자기를 위해서는 쓰지 않으려는/ 따신 봄볕 한오라기./ 자기 몸에는 걸치지 않으려는/ 어머니 그 옛적 마음을/ 저도 이미/ 어머니가 된 여자는 알고 있나니/ 저도 또한 속 깊이/ 그 어머니를 갖추고 있나니.

▨… 햄릿이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고 부르짖었을 때, 이 땅의 어머니들은 ‘여자는 약할지라도 어머니는 강하다’라고 맞불을 놓았었다. 어머니가 되어 비로소 강해지는 여인의 모습을 시인 유안진은, “비로소/ 꽃들은 어여쁘고/ 노래는 즐겁고/ 상한 갈대 한 포기도/ 천하보다 소중하고…/ 기적처럼/ 나에게/ 아이가 왔다.(아기 오는 날)고 노래했었다.

▨… 이 여성들이 자기희생의 본질을 간직하며 사회변화의 전면에 나섰다. ‘꼭 너 같은 딸을 낳아라’라는 말로 딸을 향한 사랑을 감추기만 했던 여인들이 자녀들의 세계는 자신들의 세계와는 다르기를 염원하여 행동에 나선 것이다. 여성성이 모성애로만 표현되던 ‘인형의집’에서 해방을 선언한 것이다. 오늘의 우리사회에는 가부장적인 성향이 아직은 남아있다 하더라도 대세는 남녀평등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 우리 성결교회도 교회발전에 기여하는 여성의 역할을 모성애적 헌신에만 국한시켜 온 것은 아닌지 이제는 물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성결인의 70퍼센트 이상이 여성인데 총회에서 여성대의원 찾기는 개 핥은 죽사발에서 밥알 찾기만큼이나 힘들 정도이다. 어느 여성결인이 말했다. “총회대의원으로 10퍼센트만 여성이 참여해도, 성결교회가 달라질 것입니다.” 귀 한번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