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이런 참혹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지에 대해 저 자신도 참담함을 감출 길이 없고… 저 자신부터 뼈를 깎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반성합니다….” “2월 초 세간에 알려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질 것 같은 인면수심의 끔찍한 사건 앞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는 무한 책임을 느낍니다… 머리 조아려 통회하며 깊이 사죄합니다.” 총회장이 목회서신 형식으로, 서울신대 이사장과 총장이 공동 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 이름이 성결교회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고 모든 성결인들이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떨구었다. 그러나 이 부끄러운 일을 감추려하지 않고 “뼈를 깎는 마음으로 회개하고”, “머리 조아려 통회하는” 총회장과 서울신대 관계자들의 모습은 우리 성결교회가 이번 사태를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여겨진다. 그 사과문으로 모든 성결인은 조금이라도 부끄러움을 씻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 그러나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느냐, 곧 현대 목회의 어떤 성향과 목회자 사회의 어떤 구조가 이런 사태를 부추겼는가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구조개혁이 따르지 않는다면 ‘참회’는 통곡의 벽 앞에서 빌리는 유대인의 모자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문화심리학이 이미 밝혔듯이 어떤 개인도 그가 속한 사회 또는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환경의 산물이라고까지 말하지 않는가.

▨… 촘스키(A.N. Chomsky)가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말하며 “우리 인간의 본성에는 쉽게 유능한 고문자, 대량 학살자, 노예 감독자로 바뀔 수 있는 성질이 있다. 어린이를 심하게 때리는 사람을 본다면, 저런 게 인간의 본성이니 상관없어” 라고 해도 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세상의 물음에 답하다’) 촘스키는, 예전에는 문제 삼지 않았던 것이라도 이제는 문제 삼는 용기가 현대 지성의 필수조건임을 밝히고 싶었던 것이다.

▨… 아무도 문제 삼지 않지만, 오늘의 목회자들은 무한경쟁의 본보기 같은 목회현장에 내몰리고 있다. 겉은 성령의 역사로 포장됐다 하더라도 내면에서는 동료와 친구가 존재하지 않는 ‘팔꿈치사회’가 오늘의 목회자 사회의 구조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는가. 이 경쟁의 내면화 과정에서 유학으로 박사학위까지 받은 젊은 신학도가 비인간화의 스올에로 추락한 것 아닐까. 이제는 물어야 한다. 목회자를 무한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내모는 주범의 정체는 무엇이며 언제까지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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