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 교황이 14일 방한한다. 30년 만에 이뤄지는 교황 방한 행사를 앞두고 가톨릭계는 물론이고 일반 사회도 술렁이는 모습이다.

이번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한 목적이 소외된 이웃과 한반도 평화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충북 음성의 장애인, 행려인 공동체인 ‘꽃동네’를 방문하고 세월호 희생자 유족도 만날 예정이다.

교황의 이번 방한이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이들에게 희망이 되고,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프란체스코 교황은 지난해 3월 13일, 교황으로 선출되면서부터 곧바로 세계적인 관심을 끌었다. 진보적 성향인 예수회 출신으로는 처음이고 라틴아메리카 출신이란 점, 아시시의 성인 프란체스코를 교황의 공식 이름으로 택한 것 등이 관심을 끌었다.

이후에도 리무진을 마다하고 추기경들과 같은 버스를 탔고, 공동 숙소로 거처를 정했다. 가난한 이, 병든 이, 감옥에 갇힌 이들을 찾아갔고, 에이즈 환자의 발을 씻어주고, 노숙자들을 교황청에 초청하는  등 이전 교황과 다른 행보를 보였다.

세상은 이 같은 교황의 행보를 ‘파격’이라고 했지만 정작 자신은 그리스도의 정신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생각뿐이라며 모든 가톨릭 성직자가 당연히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한은 섬기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을 다시 생각하고 실천하는 더없이 소중한 계기가 되어야 한다.

개신교 일부 목회자와 단체들은 ‘교황 우상화, 신격화를 반대한다는 명분으로 교황 방한 반대운동을 펼치고 있지만 교회연합의 장에서 보면 삼가야 한다.

‘교황이 오면 개신교 신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걱정하기보다는 이번 교황 방문을 자성과 갱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루터는 중세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영광의 신학을 거부하며 출발했지만 한국교회의 현실은 중세가톨릭교회와 다를 바가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교황은 적이 아니며, 가톨릭교회 역시 배타적 대상이 아니다. 가톨릭교회와 프로테스탄트의 상호 종교적 관용은 독일에서는 1555년 아우구스부르크 종교협약을 통해, 그리고 유럽 전역에서는 1648년 베스트팔렌종교평화협약을 통해 조인되었다. 가

톨릭과 프로테스탄트의 관계 속에서 상대의 신앙을 이단시하거나 무시하는 배타적 태도는 이미 오래전에 역사적 유물이 되었다. 

분명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부패한 가톨릭을 저항하며 박차고 나왔지만 오늘날 개신교 교회가 당시 출발할 때의 프로테스탄트 정신을 얼마나 간직하고 있는지를 되돌아 봐야 한다.

개신교보다 가톨릭에 대한 신뢰와 선호도가 더 높은 것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성찰해야 한다. 500년 전 종교개혁의 칼날이 지금은 가톨릭이 아니라 개신교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한국 교회의 미래는 암울하다.

교황 방한을 반대할 일도 아니지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 가톨릭교회의 가장 높은 사람이 왔다고 반기기만 한다면 교황의 방한은 의미가 없다. 반대로 교황 방한을 이용한 종교적 마케팅이나 이벤트는 지양돼야 한다.

가톨릭은 이번 방한이 가톨릭의 이미지를 높이는 기회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신자가 이동해 가톨릭교회의 성장을 기대하는 것도 교황 방문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일이다.   

이번 교황 방문을 통해 가톨릭은 초기 천주교회가 박해와 순교를 당하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신앙의 본질을 성찰하고 다시금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프로테스탄트 교회도 부와 권력을 내려놓고 약자와 가난한 자를 위해 헌신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을 다시금 새기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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