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 언약의 피

우리에게는 프랑스나 칠레에서 생산된 포도주가 질 좋은 것으로 구분되는 것 같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지리적으로 이스라엘과 터키 지방을 포함한 ‘레반트’라고 부르는 이 지역의 포도주가 상당히 인기가 있다. 이미 이 지역에서는 기원전 3000년경에 포도주를 짜는 장소가 있었으며 포도재배가 기원된 장소인 것이 증명된 바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도 노아가 아라랏산 즉, 현재의 터키 지역에 도착해 처음 포도나무를 재배한 사실을 기억할 것이다. 고대 이 지역의 포도주는 질 좋은 것으로 앗시리아와 이집트에까지 수출하였다. 앗시리아와 이집트의 덥고 건조한 기후는 포도를 재배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오직 적은 양의 포도주만을 생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포도주는 고대부터 일상적인 식탁에 항상 오르내리는 음료였다. 그 덕분에 이스라엘은 성경시대 주변 국가들에 많은 양의 포도주를 제공했던 것으로 보인다. 레반트의 경제에 포도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컸는가는 성경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이사야는 모압 땅의 멸망을 “즐거움과 기쁨이 기름진 밭에서 떠났고 포도원에는 노래와 즐거운 소리가 없어지겠고 틀에는 포도를 밟을 사람이 없으리니 이는 내가 그 소리를 그치게 하였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대 포도주를 밟는 모습 재현

포도는 보통 8~9월에 수확하여 암반을 편평하고 넓게 판 장소에 담고 발로 밟았다. 포도를 밟을 때는 전 가족이 참석했고 기쁨과 환희의 연회가 베풀어졌기에 이 소리가 그친다는 것은 곧 황폐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예레미야도 유다 왕국이 본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때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렘 32:15)라는 상징적인 예언을 하고 있다. 포도원의 회복은 곧 그들의 경제적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다.

포도가 이스라엘 일상에서 항상 접하는 과일이었음은 신약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예수의 비유 중에는 포도밭과 포도주가 자주 등장하고 있다. 공생애 첫 번째 기적 역시 포도주와 관련된 것이었다. 요한복음 2:1~11에서 예수와 그의 모친 마리아는 혼례에 참석하고 있다. 예수의 공생애 마지막 만찬에서도 역시 포도주가 등장한다.

유대인들이 돌로 만든 용기를 사용했던 관습 덕분에 학자 중에는 예수의 마지막 만찬에도 돌로 만든 잔이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유월절을 위해 만찬을 마련했다는 것은 집 주인이 유대인이었다는 것에 확신을 갖게 한다.

예수의 마지막 만찬 장소는 다락방이 아닌 적어도 50명이 들어갈 수 있었던 꽤 큰 이층방을 가지고 있는 집이었다. 집 주인은 상당히 부유하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우리가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에 평상시 사용하지 않는 값비싼 그릇을 꺼내는 것처럼 고급 용기를 식탁에 올려놓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당시 고급 용기는 로마식의 유리그릇이었고 다행히 유리도 돌처럼 부정을 타지 않는 재료 중 하나였다. 안타깝게도 우리에겐 성배에 관한 어떤 자료도 없다. 그러나 성배가 어떤 재료로 만들어졌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1세기 유대인들에게 포도주는 일상의 필수 음료였다. 포도주는 유월절이기 때문에 식탁에 올려진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포도주를 “나의 피 언약의 피”라고 비유하시며 마시라고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에게 매일의 일상에서 포도주를 대할 때마다 그분의 피를 기억하게 하심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혹 일년에 두어 번 이루어지는 성만찬시에만 그분의 피 흘리심을 기억하고 있지는 않는가. 우리 역시 유대인들이 일상에서 포도주를 접하듯 매일 그분의 피를 기억하며 체험하여야 할 것이다.       
※ 구약성서 세계는 이번 회가 마지막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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