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는 일제의 징용에 끌려갔다. 비행장 공사장에서 아버지는 팔뚝을 잃었다. 6·25에 참전했던 아들은 다리를 잃고 돌아왔다. “이기 무슨 꼴이고, 이기.” 다리 없는 아들을 처음 맞은, 팔뚝 없는 아버지의 입에선 외마디 소리가 터져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외나무다리를 건너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업었다. 아버지가 사 들었던 고등어 한 마리는 아들이 대신 들었다. “그러니까 집에 앉아서 할 일은 니가 하고 나딩기메 할 일은 내가 하고, 그러면 안 되겠나, 그제?”(하근찬·수난이대)

▨… 나라를 다시 찾은 지 겨우 5년, 독립의 기반을 아직 다지지도 못한 이 나라에 동족상잔의 비극이 휘몰아쳤다. 한국전쟁, 이땅에서는 한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 대규모의 살상전이 벌어졌으며, 그것이 핏줄을 함께한 형제끼리의 총질이었기에, 총소리가 멈췄어도 마음의 상처는 결코 씻어지지 않았다.

▨… 휴전 당시의 유엔군 사령관이었던 클라크(Mark Wayne Clark)는, “전쟁으로 공산주의자를 죽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총알로 공산주의라는 사상을 철저히 뿌리뽑을 수는 없다. 공산주의는 빈곤과 불만이 있는 곳에 번식하는 독균이다”라고 갈파했었다. 클라크의 이 지적은 우리 남녘 사람들이 공산주의를 어떻게 이해하고 대결해야 하는가를 밝혀주는 것 아닐까.

▨… 건축비 일부는 아직 부채로 남아 있는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의 관장이 선정되었다고 한다. 눈독 들이는 이들이 많아 관장 선정이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는 후문이다. 새 관장의 취임으로 부채를 남김 없이 청산한 순교기념관이 모든 성결인들의 신앙의 순례지가 되어 방문자들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놀라운 체험의 장소가 되어지기를 성결인들은 소망하고 있다.

▨… 그럴 리야 없겠지만, 행여라도 순교의 은혜를 기리고 체험하는 자리가 공산주의자들을 향한 미움과 분노 때문에 적개심을 불태우는 자리로 변질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비록 형제를 향하여 ‘라가’라고 침 뱉었던 역사를 씻어내지 못하고 있지만 순교기념관을 통해서 그 적개심을 용서로, 화해로 변화시키는 역사를 일으켜야 한다. 이제는 그 정도로는 성숙된 신앙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