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대처하는 능력

임미영 박사(서울신대)
세월호 침몰 사건은 우리에게 잔인한 사월을 보내게 했다. 대한민국은 웃음을 잃은 채 한숨과 눈물로 부활절을 보냈다. 행사들은 취소됐고 노란 리본을 단 사람들은 늘어가고 있다.

매년 수차례 일어나는 재해와 재난에도 불구하고 위기의 순간은 또 다시 위기가 되어버렸다. 위기를 헤쳐나가는 능력의 부재로 우리는 또 다시 자식을 잃은 어미와 부모를 잃은 아이의 절규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왜 선장은 이 위기의 순간에 움직이지 말라고 말했을까? 왜 선원들은 승객들은 버려둔 채 자신들만 나왔을까? 왜 해경은 아직 침몰이 되기 전에 승객들을 구해내지 못했을까? 왜 정부는 위기관리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한 걸까? 질문만 꼬리를 이어 갈 뿐이다.

이스라엘은 항상 전쟁에 노출되어 있는 나라였다. 강대국의 침략은 그들의 삶을 위협했다. 이러한 순간에 이스라엘의 어른들과 정부는 어떻게 대처하였을까?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수르 사르곤의 죽음의 소식은 히스기야에게 앗수르에 대항할 힘을 주었다. 그러나 왕위를 이어 받은 산헤립은 만만치 않은 임금이었고 그의 기록에 의하면 앗수르는 남왕국 46개 도시를 휩쓸었으며 그 중에는 라기스도 있었다.(왕하 18장; 역대하 32장)

앗수르의 니느웨에서 발견된 산헤립의 궁전에는 그의 전쟁 업적을 기록한 벽부조가 발견된 바 있다. 그의 벽부조 중에는 라기스를 점령하고 왕좌에 앉아 조공과 포로들을 맞이하고 있는 산헤립을 볼 수 있다. 앗수르의 벽부조는 왼쪽에서 시작하여 오른쪽으로 시간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어 산헤립이 바라보고 있는 왼쪽부터 우리는 전쟁의 모습과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이 벽부조에 의하면 전쟁은 격렬했다. 앗수르는 공성퇴를 이용하여 성벽을 부수고 라기스의 군사들은 횃불과 물매돌을 던져 적군이 성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접전의 현장에서 성문을 빠져나가고 있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흥미로운 것은 피난을 가고 있는 이들의 대부분이 아이들과 여인들이라는 것이다.

라기스의 사람들은 전쟁의 포효 속에서 아이와 여인부터 살리려 했다. 더불어 피난가는 이들의 행렬 속에서 고위층의 사람을 찾아 볼 수 없다.

고대 중동에서 일반 남성들은 대체로 활동하기 편한 짧은 치마 형태의 의복을 착용한 데 반해 보다 활동이 적은 고위 층의 사람들은 긴 치마 형태를 입었다. 이 긴 치마를 입은 남성들은 피난행렬이 아닌, 오히려 포로로 산헤립 앞으로 끌려가는 행렬에 서 있다. 그들은 머리에 쓰던 두건도 지위를 상징하는 겉옷도 벗겨진 채 끌려가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신발마저 신고 있지 않다. 그들의 모습은 치욕적인 모멸감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기스의 정부 관료들은 위기의 순간에 성문을 빠져 나가 피난을 선택하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에 끝까지 남아 성을 지켰고 결국 적군에게 사로잡힐 수 밖에 없었다. 정부 관료로서 성과 성 안의 백성은 그들이 지켜야 할 책임이며 의무였기에 그들은 결코 저버리지 않았다.

위기가 찾아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저 자신의 안위를 찾는다. 그러나 남에 대한 배려와 자신이 지켜야 할 책임과 의무를 먼저 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위기를 극복하고 대처하는 능력은 나 보다 남을 배려하는 책임의식이 있을 때 보다 강화될 것이다. 지금은 그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라는 말밖에 할 수가 없어 안타까울 뿐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