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잠들다전통적인 한국 사람이라면 대부분 조상의 묫자리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에 상당히 신경 쓴다. 조상의 묫자리가 좋은 곳일수록 가문과 후손이 축복을 받는다고 믿었던 우리에게 매장은 관심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집안에 흉흉한 일들이 벌어지면 모든 원인은 조상이 노하셨거나 묫자리를 잘못 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조상을 우상으로 섬기지 않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에도 조상의 묘 즉 매장 관습은 그들 생활에서 중요한 일 중 하나였다. 이스라엘은 한 사람의 삶의 결과가 매장으로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그의 인생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했다면 부끄러운 모습으로 끝나리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유다의 왕 여호야김은 왕의 묘지에 매장되는 대신 “예루살렘 문밖에 던져지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였다”.(렘 22:19;36:30)

또한 왕비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종교적 타락 때문에 이세벨이 죽었을 때 “개들이 이스르엘 성읍 곁에서 그녀의 시체를 먹었다”(왕상 21:23)는 수치스러운 기록을 남기고 말았다. 그러므로 매장은 한 사람의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가를 알 수 있는 수단 중 하나였다.

결국 자손들은 조상과 부모의 장례를 잘 치뤄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학자들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다섯 번째 계명은 살아 있을 때뿐만 아니라 죽어서도 공경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아버지의 매장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신구약 시대를 통틀어 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은 벤치로 둘러싸인 무덤에 장사되었다. 무덤에는 세대를 이어가며 가족을 함께 묻었는데 자연 동굴이거나 바위산을 뚫어 만든 굴 형태였다. 이 가족무덤의 입구는 석회석을 깎아 만든 짧고 경사진 통로로 연결되었다. 구약시대의 무덤은 여러 시신을 매장하기 위하여 연결된 몇 개의 방으로 이루어지기도 하였으며 방안에는 시신을 놓아 둘 수 있도록 바위 벽을 높게 깎아 벤치들이 마련되어 있었다.

벤치의 표면에는 우리의 1970년대 여인들이 고데기로 머리를 둥글게 만 것 같은 “하토르 여신의 머리 모양”이 조각되어 있어 머리를 두는 장소로 사용된 예들도 발견된다. 그들은 시신을 무덤에 일시적으로만 두었다가 살이 부패하고 나면 뼈들을 모아 구덩이나 저장고로 옮겨 놓는 관습을 행했다. 구약시대 무덤 안의 벤치들 아래에는 큰 구멍이 파여 있고 그 안에 먼저 죽은 자들의 뼈를 모아 두는 관습이 있었다.  

가장 적절한 명예로운 매장은 이러한 가족의 묘에 시신이 안치되는 것이다. 성서에는 한 사람이 죽었을 때 “ㅇㅇ와 함께 잠들다”라든가“ㅇㅇ의 아버지에게로 돌아가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요셉은 야곱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이집트에서 가나안땅으로 와 아버지의 뼈를 조상 아브라함이 묻힌 막벨라 동굴에 묻었다(창 50: 4~14). 모세는 이집트에서 약속의 땅으로 갈 때에 요셉의 소원대로 그의 뼈를 모아 가지고 갔다(창 50:25;출 13:19). 

요시야에게 훌다는 “내가(여호와가) 너로 너의 조상들에게 돌아가서 평안히 묘실로 들어가게 하리니”(왕하 22:20) 라고 말한다. 사사기서는 기드온의 무덤을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되었더라”(삿 8:32)라고 기록돼 있다. 하나님 앞에 바른 삶을 살았던 자들은 자녀들의 공경을 죽어서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와 함께 잘 수 있는 영광스러운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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