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남편이 다시 살아나기를 바라면서 7년 동안 시신과 함께 살고 있다가 발각된 사건이 있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알려진 그는 엘리트 그룹에 속하는 현직 약사다. 시신에 옷을 갈아입히는 등 살아있는 남편으로 대했고 가족들에게도 외출 시 죽은 사람에게 인사를 하게 했다고 한다.

이런 기사를 보면서 인간에게 신앙이란 과연 무엇인가 잠깐 고뇌에 빠진 적이 있다. 2월 16일 이집트 한국인 버스 폭탄테러 소식은 우리들을 매우 우울하게 만들었다. 독실한 크리스천들은 누구나 성지순례를 가고 싶어 한다. 성경에서 읽고 듣던 선지자들의 행적과 예수님 생전에 걷던 길을 되 뇌면서 무한한 은혜를 체험하려는 것은 기독교 신자라면 누구나 가지는 로망이다.

폭탄테러를 당한 진천중앙교회의 성도들은 매월 10만 원씩 3년 동안 적금을 부어가면서 성지순례의 꿈을 키웠다고 한다. 이 위험지역으로 해마다 성지 순례를 다녀오는 성도들이 무려 5만여 명이나 되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사고를 당한 교회는 지금까지 별 사고가 없었으니 안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폭발사고 지역 일대는 사고 위험이 늘 도사리고 있었다. 유럽 순례자들의 발길이 뜸한 지는 오래고 심지어 현지인들조차도 피하는 곳이었다.

우리 외교부에서도 여행제한지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이런데도 한국인들은 겁 없이 성지순례 여행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교와 전도는 기독교인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지상명령이다. 해외에서 많은 선교사가 활동하는 것은 예수님의 지상 명령이자 한국교회의 자랑이다. 무슨 일이든 목적만을 강조하다 보면 과정의 허술함을 건너뛰기 쉽다. 한 성지순례 여행사 관계자가 한 말을 되씹어 볼 필요가 있다.

“성지순례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신자나 교회는 없다. 일부 신앙심 강한 신도들은 ‘가서 죽으면 순교요 영광이다’라며 위험에도 개의치 않는다.”

일부이기는 하겠지만 성지순례를 명분으로 여행을 즐기다가 죽어도 그것을 순교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우리 기독교인들의 신앙관이다. 새벽기도회에 오가다 질주하는 자동차에 치여 사망하는 노인들을 가끔 본다. 대부분 나이 많은 권사님들이다. 교회에서는 이런 분들을 기도의 어머니라 부르면서 칭송하지만 그들의 안전에는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맹목적인 순종과 복종의 가르침은 건전한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신앙의 멘토는 멘티인 신자들을 바로 가르쳐야 한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될 것입니다”(요한일서 4:12).

기독인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육신의 눈으로 보지 못하고 맨 귀로 음성을 듣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려고 노력한다. 이것이 신앙인의 자세다. 성지순례의 사고를 보면서 교회지도자들의 교역관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사치인 여행사의 말만 듣고 위험지역의 성지순례 여행을 강행한 교회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교회는 나이 많은 분들의 새벽기도 출석을 특별 지도해야 한다. 육체적으로 병약한 노인들은 가정에서 그 시간에 기도하면 된다고 일러주는 것이 바른 가르침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욕구를 채우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명분을 내세워서라도 상대방을 순응시키려고 든다. 종교에서만은 이런 잘못된 가치가 수정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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