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을 만들지 말라

현대 예루살렘 도시의 상징은 사자이다. 몇 년 전 이스라엘의 예술가들은 수십 개의 사자상을 만들어 각자 자신들의 예술적 기량을 발휘하여 장식하였다. 이 사자상은 예루살렘 곳곳에 세워져 석회석의 베이지 계통 색깔이 주를 이뤘던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유대 종교계에서는 이 사자상 배치에 반발이 상당했다. 그 이유는 바로 십계명 ‘너는 나 외에는 신들을 네게 주지 말라….’(출 20:3~5)에 어긋나는 행위이라는 것이다.

물론 누구도 사자상을 신으로 섬겨 절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형상을 만드는 것 자체를 유대교에서는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약과 신약 시대 모두 이스라엘에서는 이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해 왔다. 고대 중동지역은 잘 알려진 것처럼 다신을 섬겼고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그리스 지역에서는 신들의 모습을 담은 여러 예술품과 함께 신상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이 거주했던 유적지에서 형상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들을 찾는 것은 상당히 어려웠다. 이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려고 했던 모습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스라엘이 이 율법을 반드시 지킨 것은 아니다. 그들은 때로 율법을 어겼고 우상을 만드는 실수를 범했다.

므낫세의 경우 그는 아버지 히스기야와 달리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과 아합을 좇아 우상숭배자가 되었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왕하 23장)때 불살라졌기에 우리는 현재 그 실체를 알 수는 없지만 므낫세는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여 섬겼다(왕하 21장). 

히스기야와 므낫세 시대는 정치적으로 위태로운 시기였다. 앗수르가 북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켰고 예루살렘마저 산헤립의 공격으로 공포 속에 있었다. 일반적으로 정치적 불안은 종교적 불안까지 가져온다. 이스라엘에게는 이 불안감을 떨쳐버릴 수 있는 눈에 보이고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이미 고대 중동지역에서 가장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는 여인들의 모습을 조각하여 지니는 습관이 있었다.

여인상들은 대체로 벌거벗었으며 풍만한 가슴과 하체를 가지고 있어 풍요와 다산 그리고 안녕을 상징해 왔다. 정확히 아세라나 어떤 여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시대 예루살렘에서도 가정이나 무덤에서 점토를 구워 만든 여인상들이 발견되었다. 높이 25cm를 넘지 않는 작은 점토상들은 가슴을 강조하여 양쪽 손으로 받치고 있다. 아랫부분이 치마의 형태로 퍼져 받침 역할을 하고 있어 어딘가에 세울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여인상들은 유다의 멸망과 함께 이 땅에서 사라졌다. 

학자들은 이 여인상들이 불안한 시대에 안녕을 염원하는 이스라엘의 민간신앙적 모습을 담은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아마도 이스라엘에게 이 여인상은 우상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흔하게 가정과 무덤 등에서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일상적인 민간적 염원을 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호세아, 예레미야, 이사야 같은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에게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곤 했다. 거대한 형상을 만들어 섬기는 것만이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두 마음을 품어 한 마음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존재에게 주는 것마저 허락되지 않았다(호세아 10:3).

선지자들은 이스라엘 멸망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이 또 다른 마음 때문이라고 말한다. 기독교에서도 역시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계명은 중요하다. 우상은 반드시 형상으로 만들어진 것만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돈이 될 수도 있고 명예가 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자녀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한 마음 외에 또 다른 마음을 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