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정신 넘실대 매력만점.. 최초 신사참배 거부, 66명 집단 순교지, 초기 한옥교회 등 색다른 테마

병촌교회 66명집단순교 기념비
    지금 충남 강경은 노랗게 익어 고개숙인 벼들과 잔잔히 흐르는 금강, 청명한 하늘이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맘때면 여느 시골이 다 이런 풍경을 품고 있을 법 하지만 강경 일대에는 특별한 '순교정신'이 깃들어 있다.
    일제 강점기 당시 최초의 신사참배거부가 일어났고, 66명 최대 순교자가 나온 곳이 바로 지척에 있다. 초기 뜨거웠던 기독교신앙을 간직하고 있는 한옥교회도 강경을 특별한 곳으로 만든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이곳의 순교지에는 '이야기가 있다'는 점이다.
가을의 정취에 빠져있는 아름다운 순교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강경교회-최초의 신사참배거부지

강경교회(신영춘 목사)는 잊혀질 뻔 했던 성결교회의 소중한 역사를 되살려 교단의 자랑, 지역의 명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강경교회는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강요받던 시절에 최초로 신사참배거부 운동이 일어났던 발원지였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기념비를 세워 성역화 했다. 강경교회 마당에는 최초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신사참배 강요에 항거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4m 높이의 기념비가 세워졌다.
사건은 1924년 10월 11일 강경공립보통학교에서 강경교회 주일학교 김복희 교사와 57명의 주일학교 학생들이 정면으로 신사참배를 거부해 일어났다. 일제시대 최초로 신사참배를 거부한 ‘단체행동’이었다. 이 사건에 대해 당시 조선일보는 10월 24일자 사설에서 ‘신사참배 거부 학생들에 대한 퇴학처분 부당성’으로 언급했으며, 동아일보는 1925년 3월 18일자와 19일자 사설에 연이어 이 사건을 보도했던 큰 사건이다.

최초 신사참배거부를 주도했던 강경교회 여교사와 주일학교 아이들이 신사참배 강요에 항거하는 모습을 기념비에 담았다.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어떻게 어린이들이 신사참배 거부를 했으냐는 점이다. 신영춘 목사는 “당시 애국부인회의 주요멤버로 활동하다 감옥에 수감된 경험있는 백신영 전도사가 교회에서 신앙을 가르치며 민족사랑과 민족성을 지키는 것까지 가르친 결과”라고 해석했다.
신 목사는 순례객들에게 어린이 신사참배 거부 사건의 전말을 비롯해 백 전도사의 투쟁 비화, 이판일 장로 이야기 등 강경교회를 들러간 이들의 숨은 이야기까지 맛깔나게 전해준다.

북옥교회(옛 강경교회)-한옥의 멋 그대로


강경교회에서 차로 10분만 가면, 대한민국 문화재청에 제42호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강경교회 옛 예배당(현 북옥감리교회)이 나온다.
북옥교회는 과거의 역사가 고스란히 숨쉬는 옛 한옥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천장구조는 들보와 종보, 서까래가 시원하게 드러나 있으며, 모든 건축에 못이 사용되지 않고 나무를 깎아 쐐기박기를 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또 기둥이 둘이 있고 출입문이 둘이 있어서 남녀의 출입을 구분한 점은 당시의 생활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북옥교회 탐방은 그 설립 의미를 회상하고 기억할 때 더욱 의미를 느끼게 된다.
옛 강경교회당 건축은 본 교단 초대감독 토마스가 예배당 대지를 매입하고자 이곳을 방문했을 때 일본인이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사건으로 시작됐다. 이 폭력사건은 영국과 일본간의 외교분쟁으로 비화된다. 결국 일본은 토마스에게 5만 불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하였고, 토마스 감독이 이를 강경교회 건축헌금으로 헌납해 교회가 세워지게 된 배경이 숨겨있다. 또 6.25전쟁 때 폭격을 맞았으나 교회지붕을 뚫고 들어온 폭탄이 불발된 사건 등 이야기거리가 넘쳐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현재 이 예배당은 현재 감리교회로 우리 교단과의 인연이 끊어진 상태라 강경교회를 통해 사전에 예약해야 방문이 가능하다.

병촌교회- 66명 집단순교지


북옥교회에서 채 10분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1950년 9월 6·25전쟁 당시 66명의 집단순교한 병촌교회(임용한 목사)가 있다.
병촌교회 66명의 신자는 6·25전쟁 중에 믿음을 지키다가 순교의 피를 흘렸다. 6·25전쟁 발발후 서울이 수복되고 국군이 다시 밀려오자 전세가 불리해진 공산세력은 병촌교회 성도들과 교회학교 학생들을 뒷산으로 끌고 갔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살려주겠다”면서 위협했다. 하지만 성도들은 고문과 회유에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키다가 결국 순교했다. 젖먹이 어린아이부터 백발 노인까지 모두 66명이 순교해 한국전쟁 시기 한국교회 순교사건 중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임용한 목사는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UCC에 담아 방문객들에게 상영하고 있다. 백발이 성성한 노미정 권사가 화자로 나서 이들 성도들이 죽음 앞에서도 “예수 믿어 구원 받으라며 복음을 전했다”고 회고한다. 
교단에서는 이들의 숭고한 뜻과 순교 신앙을 기리기 위해 1989년 ‘66인순교기념탑’을 건립했다. 순교탑은 기도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탑의 받침대에는 66명의 순교자 명단이 새겨져 있다. 기념탑 옆에는 순교자기념 예배당이 서 있다. 지금 병촌교회와 순교기념탑이 세워진 곳은 순교가 이뤄진 현장과는 거리가 약간 떨어져 있는 마을에 위치하고 있지만 성도들이 죽어간 마을 뒷산과 골짜기가 정면으로 보인다. 

강경지역 순례코스는 순교의 사건과 그 이면의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는 특별한 코스로 구성돼 있다. 강경교회를 첫 시작으로 북옥교회, 병촌교회를 2시간 안에 둘러볼 수 있을 만큼 가까이 모여있다. 또 젓갈로 유명한 강경지역의 대규모 젓갈시장을 둘러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특히 논산시에서 강경교회와 북옥교회를 등을 잇는 강경일대 기독교순교지 코스로 지정 하루코스로 순교지 순례도 하고, 강경젓갈도 맛볼 수 있는 여행코스를 조성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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