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가슴속 깊이 함께하지 못하는 공감 부재의 시대를 살고 있다.
서로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느끼며, 상대방을 향하여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는 사랑의 발걸음이 아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본문에서는 이런 상황을 피리를 불어도 함께 춤을 추지 않으며, 슬프게 울어도 가슴을 치며 애곡하지 않는 것이라 하였다.

이런 현상은 일종의 정서적 소통과 교류의 부재요, 공감능력의 상실이라 할 수 있다.
상대방과의 정서적인 단절은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 모든 관계는 원활한 감정의 교류에 기초를 두기 때문이다.

그럼, 공감능력이란 무엇인가?
동감(sympathy)은 상대방의 의견, 감정, 행동에 자신도 동일하다고 생각하여 동의하는 것이지만, 공감(empathy)은 동의의 차원이 아니라 특히 상대방의 정서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일종의 정서적 주파수 맞추기이다. 자신의 감정의 흐트러짐이 없는 상태에서의 상대방에 대한 정서적 몰입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상대방이 기뻐할 때 함께 기뻐하며, 상대방이 아파할 때 같이 아픔을 나눌 수 있으며, 슬퍼할 때 더불어 슬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상대방을 가슴으로 보듬어 안으며, 더 큰 사랑으로 그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다.
또한, 너를 죽인 유일자와 너를 잃어버린 단독자로서의 삶이 아닌 나와 상대방이 정서적으로 하나됨을 경험하게 된다. 

이럴 때, 교회 공동체는 성도들 간의 정서적인 풍요로움을 경험하게 되며, 성도의 교제가 더욱 깊어지게 될 것이다.

그런데 내가 너무 아프면 상대방의 아픔을 가슴으로 느끼지 못한다. 우리는 몸이 너무 아프면 상대방을 몸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이 너무 아프면 상대방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상대방에게 항상 일방적이며,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맞추어주기를 바란다. 이런 관계에서는 성도들의 진정한 사귐과 교제는 불가능하며, 끊임없는 갈등만 야기된다.

그러므로, 자신이 먼저 가슴의 상처를 치유받고 회복되어야 한다. 내가 건강할 때 상대방을 도울 수 있으며, 건강한 관계를 통하여 믿음의 성숙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영적인 공감 능력을 상실한 성도는 항상 일방적이다. 하나님께 무조건 요구하는 일방적인 기도를 한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소통이 단절된 채, 자신의 요구만을 전달하며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묻지 않는다. 하나님의 생각과 상대방의 감정을 먼저 헤아리고 열린 가슴으로 다가가야 한다. 성숙한 관계는 일방이 아닌 쌍방 소통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 우리에게 상대방의 아픔과 슬픔에 더욱 민감하게 하셔서 열린 마음과 따뜻한 사랑으로 다가가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감성 리더십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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