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말 한마디, 위로와 격려가 되는 말 한마디가 닫힌 마음을 열어 세상을 밝게 하고 용기와 희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하는 이 아침이다.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또 직장에서나 가정에서 일상 하는 말은 긍정적이고 창조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내뱉은 말 한마디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음에 큰 상처를 갖게 할 뿐만 아니라 희망과 소망을 주지 못하고 실망과 좌절감을 갖게 한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속담 중에는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 “말이 씨가 된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뿐만 아니라 “말 속에 뼈가 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등 말의 중요성과 위력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많다. 이러한 속담들을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말은 상대성으로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말을 잘못하면 더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성경 잠언 15장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고 하였다. 비록 화가 나서 누군가 말을 한다 할지라도 유순한 대답으로 분노를 쉬게 할 수 있다면 그 말은 지혜로운 말이 된다. 반면에 과격한 말은 분노를 더 격동하게 할 뿐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도 마음에 새겨 두어야 한다.

에베소서 4장에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하였다. 덕을 세울 수 있는 선한 말을 많이 하여야 한다. 그러나 은혜가 되지 않는 말은 입 밖에도 내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야고보서 3장을 보면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예수님 외에는 온전한 사람이 없다. 그래서 말에 실수가 없을 수 없다. 다만 그 안에 진정성이나 진실성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라고 보여진다. 고의로 빚어진 말의 실수가 아니라면 그 말의 진정성이나 진실성만으로도 충분하게 해명 될 수 있어 그것으로 인해서 오해나 감정도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마태복음 12장에 보면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고 하였다. 즉, 마음에 없는 말은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말의 진정성이나 진실성이 그 말의 가치를 가름하게 한다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요즈음 우리사회에서는 말잔치가 너무 난무한다. 귀담아 들어야 할지, 듣지 말아야 할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는 말이 너무 많다. 자신의 말잔치가 듣는 사람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오히려 짜증나게 하며 실망감을 안겨 준다면 최소한 그 말에 대한 책임성만이라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가 위정자들은 말보다는 실천이 중요하다. 자신이 내뱉은 말을 이리저리 짜맞춰 국민들을 속이려 하고 임의로 해석을 하려고 든다면 국민들은 항상 속아서 살아야만 한다는 것인가?

아무쪼록 책임성을 가지고 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해서 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가려서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말은 많이 하고 무익한 말은 아낄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마태복음 12장에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하였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의롭다 함을 받을 수도 있고 정죄함을 받을 수 있다면 말이 얼마나 중요하고 그 위력이 어떠한지 새삼 깨달아 서로가 마음을 여는 말 한마디를 실천해 나갔으면 한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