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바야흐로 디지털 혁명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SNS 등 무선통신으로 인터넷이 접속되는 상황에서 우리는 디지털 혁명의 끝이 과연 어디까지일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 누구도 시간이 느리게 가고 있는 것을 참아내지 못하고 있다.

클릭 하나로 파악될 수 있는 정보를 도서관을 헤매면서 책장과 오래된 서류철을 넘기려 들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오랜 시간을 들여 설득되는 방식을 즐기지 않는다. 문장은 짧고 호흡은 빨라야 하며, 길이 또한 길면 치명적인 결함을 갖는 것이 된다.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사고력이 지닌 힘을 점차 잃어가고 있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고, 깊은 사고가 요구되며 오래된 삶의 이야기에 뿌리를 두고 있는 복음은 ‘반(反)디지털’ 적이다. 급하고 가볍고 깊지 않은 디지털 시대의 사고방식과, 그와는 반대의 특성을 지닌 아날로그 시대의 산물인 복음은 그 어울림에 있어서 사뭇 어긋나 보인다. 그렇다면 복음은 디지털 시대에 맞게 자신의 옷을 가볍고 속도감 있게 만들어 다가가야 성공하는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현실에 적응해야 살아남는다는 식의 논리로 복음의 선교전략이 변용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복음의 진면목에 대한 사고가 잘못되어 있기에 나올 수 있는 결론이다. 디지털적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복음이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하고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디지털적 현실이 놓치고 있는 인간과 세상의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 복음을 제시하는 자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인내심이 떨어지는 인간형이 늘어나면 사람들 사이에 겪는 갈등과 충돌은 더욱 심각해진다. 깊은 사고와 인간적 배려의 능력이 빈곤한 인간형이 늘어나면 사람들은 단세포적 삶으로 기울어지게 된다. 시간이 필요한 기다림을 참아내지 못하는 인간형이 증가하면, 속성의 논리가 모든 것을 지배함으로써 인간적 성숙을 기대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 질 것이다. 이리하여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기술문명의 발전에 의한 물질문명의 편리함은 확보할지 모르나 인간, 그 자체의 현실은 도리어 불행해지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 대목에서 우리는 복음의 진가를 힘 있게 발휘해야 하는 현실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대한 인간성을 경고하고 그 결과가 어떤 덫에 인간을 옭아매어갈 것인지 알려야 하는 것이다. 속도를 숭상하는 현실이 기다림 속에서 익어 가는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황폐하게 할 수 있음을 깨쳐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디지털 시대가 온다 해도 그것이 인간의 사랑과 미움, 오만과 겸손, 정의와 악, 그리고 종국적으로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첨단의 기술이 발전하면서 초첨단 조직범죄와 자살과 폭력이 더욱 심각하게 난무하는 것을 보아도 우리는 디지털이 인간의 존재,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모순과 한계, 그리고 돌파구를 해결해주는 열쇠는 아니라는 점을 직시하게 된다. 

세상이 이제 복음은 낡았고 디지털시대와는 인연이 없다고 주장한다 해도, 인간의 문제는 영원히 우리에게 주어지는 운명과도 같은 숙제이다. 문제는 복음을 대하는 우리 자신이 이 디지털 시대를 사는 인간의 현실과 고뇌를 명확히 보고 해결해 내는 능력이 부족한 상황, 그 자체이다.

이제 교회는 이미 상식화되어 버린 성경 해석을 반복해서 지루하게 풀어 가는 틀에서 벗어나 본문의 내면에 담겨 있는 인간사의 갈등과 위기, 좌절과 열망, 전환 등을 현재의 시점에서 드라마틱하게 복원해 내는 독법이 필요하다.

그럴 때 비로소 성경의 이야기는 우리 삶의 이야기와 직결될 수 있고 디지털 시대가 제기하는 문제들을 신앙적으로 해결하는 중요한 열쇠를 제공해 줄 수 있다. 복음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문제제기의 힘, 그것이 더욱 필요한 것이며 이에 명쾌한 해답이 구해질 때 우리는 ‘디지털 시대의 복음’이라는 새로운 화두의 실마리를 풀어낼 수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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