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무척 추울 것이란 예보가 있어서 장작 난로를 한 대 들여왔다. 사택 거실이 넓은데다가 햇볕이 들지 않는 동향(東向)이므로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하기에는 너무 부담이 커서 해마다 겨울이면 늘 춥게 살아왔다. 그래서 이제나 저제나 하고 난로를 들여오려고 하던 차에 인근 교회의 선배 목사님께서 난로를 구입한다고 하시기에 공동구매를 한 것이다. 어쨌든 난로에 불을 때는 일은 낭만적이고도 실용적인 겨울 놀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불을 때면서 장작불을 피우는 일은 단지 삶을 위한 방편을 넘어 영적 차원의 묵상을 전해준다.

장작불을 때면서 느끼는 첫 묵상은 장작의 준비 과정이다. 농촌에는 산림보호 차원에서 야산에 간벌(間伐)을 하고 잘라낸 나무를 쌓아두기에 부지런하기만 하면 난방용 화목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다. 예전에 화목보일러를 사용한 경험이 있어서 나무를 자르고 장작을 패서 화목을 구비하는 일에는 꽤 익숙한 편이다. 그럼에도 산에 가서 기계톱으로 나무를 자르거나 지게로 져오고, 이를 차에 싣고, 사택 창고에 내려서 쌓고 다시 전기톱이나 절단기로 팔뚝만큼 자르고, 이를 가지런히 쌓아서 한 키만큼 되게 늘어놓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세상일에 그냥 되는 일이 어디 있으랴. 누군가의 노동의 대가를 통하여 우리는 여러 가지 삶의 수단들을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르는 일에는 인내가 요구된다.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자세는 인내가 아닐까.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생각하면 그 등짐이 아무리 무거워도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이 솟구친다. 그래서 장작을 마련하는 과정은 십자가의 묵상을 요하는 힘겹지만 즐거운 시간이다.

장작불을 때면서 느끼는 두 번째 묵상은 불쏘시개를 통해서이다. 장작이 아무리 잘 준비되어도 불쏘시개가 없으면 불을 붙이기가 쉽지 않다. 나무의 잔가지나 두꺼운 종이 등의 불쏘시개는 불을 붙이는 데 꼭 필요하다. 이처럼 우리 삶의 일들을 이루어 가는 데 있어서 주연만 있다면 이 세상은 이루어질 수 없다. 조연이 꼭 필요하다. 사실 주연보다 더 많은 조연이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모두가 다 주연이다. 주연들이 모여서 또 다른 주연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자기 삶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장작을 준비하고 불때는 일이 힘들고 어렵지만 그것을 놀이로 생각한다면 즐겁게 임할 수 있다. 나는 그러한 의미에서 그것을 동계 철인 3종 경기라고 부른다. 마찬가지로 우리 모든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최선을 다할 때 우리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2014년이 시작되었다. 또다시 우리는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이 한 해를 시작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불을 지르러 오셨다(눅 12:49)는 주님의 말씀처럼 또다시 이 세상에 불을 지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맡은 사역에 자부심을 가지고 고통과 어려움을 즐겁게 이겨 나가야 한다. 사역의 규모나 종류에 관계없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우리의 일들이 비록 부분적이고 지극히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의 차원에서 보면 전체를 구성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일에 우리 모두 힘차게 달려야 하지 않겠는가. 즐거운 새출발의 환호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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