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소위 ‘로마의 건국’(ab urbe condita, 도시 건설로부터)을 기점으로 날짜를 계산해 왔다. 그러다가 주전 46년에 율리우스 시저(Julius Caesar)가 알렉산드리아의 점성가 소시게네스와 마르쿠스 플라비우스에게 지시해 춘분을 시작점으로 해서 한 해를 12개월로 하고 4년에 한 번씩 하루를 첨가하는 윤년을 포함하는 달력을 만들었다.

개정원년의 일수는 445일로 조정됐고, 다음해부터 2월은 29일, 나머지 달은 30, 31일이 교차하는 365일이 되었다. 이때부터 4년마다 2월은 하루가 추가돼 30일이 되었고, 3월 대신 1월이 첫 달로 정해졌다. 이것이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이다. 율리우스력에서 1년은 365.25일이었다. 이 달력에 의하면 128년 후 거의 24시간의 오차가 생기며, 계절의 진행 표기에서 문제가 있었다.

이런 문제가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 1502~1585) 때에 발견되었다. 율리우스력의 1년은 실제보다 11분 14초가 긴데 이그나티우스 단티라는 학자가 바티칸 전망대에 설치된 해시계를 이용해 그 차이를 증명함에 따라 이를 수정하고 오차를 더 줄인 새로운 달력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율리우스력에서는 부활절 날짜가 매년 조금씩 미뤄져 열흘의 차이가 나게 되었음을 발견했다.

부활절 날짜는 주후 325년 니케아회의에서 춘분(3월 21일) 후 첫 만월(滿月) 다음의 첫 일요일로 정한 바 있다. 그리하여 부활절은 3월 22일에서 4월 25일 사이에 정해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율리우스력의 일차(日差)인 11분 14초는 쌓이고 쌓여서 16세기에는 오차가 10일이나 되었다. 그 때문에 달력에서 3월 21일에 와야 할 춘분이 실제로는 3월 31일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레고리우스 13세는 10일의 오차를 삭제하고 1582년 10월 4일을 10월 15일로 하는 그레고리우스력(Gregorian calendar)을 선포하게 되었다.

그레고리우스력의 원리는 서력년이 4로 나누어지는 해를 윤년으로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하여 서력년이 100으로 나누어져도 400으로 나누어지지 않을 때는 평년으로 하고 윤일은 2월 28일의 다음 날 29일로 하는 것이었다. 이에 의하면 율리우스력으로는 400년간에 윤년이 100회 있는데, 그레고리우스력에서는 윤년이 97회로 줄어든다. 이렇게 함으로써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시간에 아주 근접한 오늘의 달력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헬라어에 파루시아(parousiva)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는 헬라어 ‘파르’와 ‘우시아’가 결합된 말로서, ‘파르’는 ‘나란히, 함께’ 라는 뜻이고 ‘우시아’는 ‘본질, 실재’란 뜻이다. 이 두 단어를 결합하면 ‘본질(실재)과 나란히(함께) 온다’는 뜻이다. 즉, 파루시아는 ‘실재로서 오시는 예수’의 재림을 의미한다. 우리 모두가 실제로 체험하게 될 육체적 재림을 의미하는 이 종말론적 단어는 예수께서 종말에 심판의 주로 다시 오신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한다. 그날부터 우리의 달력은 율리우스력도, 그레고리우스력도 아닌 파루시아력이 될 것이다.

초대 교회는 언제나 임박한 파루시아에 대한 기대로 충만해 있었다. 그들은 인간의 시간으로 잴 수 없는 파루시아의 때가 다가오고 있음을 보았다. 그들은 ‘심판의 주’로 오시는 예수를 바라보았기에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세상에서 얻는 즐거움을 과감히 벗어 던지고 무소유의 삶을 택했다. 

‘코람 데오’(Coram Deo)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 앞에서’라는 뜻이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그리스도인은 오늘을 종말처럼 산다. 날마다 순간마다 파루시아를 느끼며 살기에 긴장을 놓지 않는다. 그 어떤 질곡에서도 파루시아에 대한 대망은 그를 ‘하나님 앞에 선 인간’으로 다잡아 놓으며,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 다시 일어나게 한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희망이 있다. 2014년이 왔다. 우리 믿음의 길과 기다림이 세상의 눈으로는 미련하게 보여도. 우리는 2014년에 하나님의 은총과 권능의 날로 채워질 파루시아력을 걸고 오신 그리스도와 함께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린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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